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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름 피아니스트
서아름 피아니스트

봄이다. 여전히 우리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고 있다. 조금은 둔해지고 조금은 익숙해진 채로 말이다. 어릴 적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살기 좋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외국에서 유학 시절 날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옷차림이었다. 사계절 내내 가죽자켓을 입고 다니던 친구들, 겨울에도 두꺼운 외투 안 반팔 티셔츠를 입는 친구들 그리고 가지각색 다른 옷차림들.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나보다 젊은 시대를 살고 있는 청춘들은 계절 없이 옷을 입는 걸 종종 볼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문화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날씨 탓도 있었을 것이다. 겨울과 봄의 중간 즈음에서 갈팡질팡 하는 요즘, '오늘은, 이제는 봄인가?' 하고 계속 묻게 된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꽃이 놀라 만개 하더니 다음날 내리는 봄비에 벌써 져버리고 없다. 비가 내리는 봄밤의 소리는 너무 예뻤다.

며칠 전 울주 세계 산악영화제에서 '봄을 노래하다'란 주제로 공모전을 펼쳤다. 나도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해 그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게 됐는데 뻔한 노래, 뻔한 내용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이란 말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느끼는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한 봄의 노래는 인생의 봄날이었다.

꼬맹이 원이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하루는 잔뜩 주눅 들어서 인생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양 친구가 없다며 우울해했다. 얼마나 그 모습이 웃기던지 하지만 꼬맹이는 진심으로 걱정 중이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 이미 무리 지어진 친구들 사이에 끼기란 힘들 것이다. 거기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으니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꼬맹이는 얼마나 답답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더니 며칠 뒤 친구가 생겼다며 얼마나 좋아하던지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가르쳐주는데 제목이 '아무 이유 없이 좋은 친구(작사·곡 류형선)'였다. 창작국악동요인데 노래도 가사도 정말 좋았다.

'아무 이유 없이 좋은 친구, 그냥 그냥 좋은 친구 참 좋은 친구, 얼굴이 잘생겨서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도 아니고 축구를 잘해서도 아니고 맛난 것 잘 사줘서 아니고…' 

어릴 적 그 시절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사귄 아영이란 친구가 떠올랐다. 입학식에 내 앞에 서 있던 친구였는데 친절하고 예쁘게 웃는 조용한 아이였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난 아직까지도 '아영'이란 이름도, 동그라미가 두 개 들어간 이름도 좋아한다. 

친구가 생긴 날은 우리 꼬맹이의 봄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그다음부터는 술술 생각나기 시작했다. 청년들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첫 직장을 구하는 것도 너무도 봄날이 많았다. 중년엔 아이가 생기고 가족이 생기고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도 등등등 봄날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노년이 되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해서 '순이의 봄날'이란 이야기를 만들었다. 순이라는 여자 주인공의 인생을 함께 엿보며 우리 인생의 봄날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와 음악이 함께 하는 음악극을 기획했다.

그런데 대본을 적다 보니 봄날이 많아질수록 슬픔도 아픔도 그리고 힘든 일도 많아졌다. 그런 것들이 많아지자 봄날은 차츰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작아졌다.

아이들 뒤치닥거리가 힘들고 하루하루 별일 아닌 것들에 지치고 별일 없으면 잘 지낸다는 거라는데 그래서 지루하고 말이다. 그걸 거꾸로 생각해보면 아이들 때문에 그래도 웃고 별일 아닌 것들에 지치지만 하루를 소중히 보냈고 별일이 없어서 감사한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 순간 봄날이 아닌 날이 없었다.

아이들의 동요에는 간단하지만 소중하고 중요한, 어른이 된 나에겐 그저 너무나도 어렵기만 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아이들이 짹짹거리며 부르는 동요는 그 어떤 아름다운 노래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아이들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묻어나온다.  

또 다른 창작국악동요인 '모두 다 꽃이야(작사·곡 류형선)'의 가사도 너무나 좋다.

'밤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가사를 듣고 있으면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배우 김혜자 할머니가 아프리카에서 굶주린 아이들을 돌보며 쓴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도 생각나고 떠들썩하게 뉴스에 나오는 학대 아동들의 이야기도 떠오르고, 경쟁하던 사람도 미워하던 사람도 나랑 다른 사람들도 생각난다. 동요를 들은 게 아닌 철학자의 심오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 마냥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게 된다. 

'나도 어른이 되겠지(작사·곡 류형선)' 

'나도 어른이 되겠지, 틀림없이 어른이 되겠지. 엄마를 꼭 빼어 닮은 어른일 거야. 엄마처럼 따뜻한 어른일 거야…(중략)…엄마가 나 어른 되게 품어 주실 거야. 밤낮으로 아빠가 손잡아 주실 거야.'

따뜻한 봄날, 동요와 함께 여러분의 수많은 봄날 중 소소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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