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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수필가
정영숙 수필가

얼마 전,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을 보았다. '서울 배리어프리 영화제 in 울산'에 올려진 작품이었다. 코로나19로 공연은 대부분 취소되고 외식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조심스럽던 때여서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3차 유행이 한고비를 넘기고 방역이 느슨해진 덕에 영화 관람이 가능했다.

배리어프리라는 말은 장벽을 없앤다는 뜻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상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구나 편의시설, 설비 등을 이용해 장벽을 없애는 것을 배리어프리 운동이라고 한다. 누구나 다 같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정신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의 운동이 펼쳐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배리어프리 영화제, 배리어프리 주택 등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일반적인 상식이 전부여서 이미 상영되고 있는 작품에 어떤 방식의 옷을 입힐지, 그 느낌은 어떨지 궁금했다. 

인터넷으로 영화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유명한 영화제작자 마이클의 아내 앤이 남편의 사업 동반자인 자크와 예기치 않게 동행하는 모습을 유쾌하면서도 잔잔하게 그린 중년의 로맨스 영화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순을 넘긴 가슴도 설레게 할 만큼 아름다운 프랑스 남부지역의 풍광과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멋진 식당의 맛있는 식사, 그리고 중년의 남녀에게 일어나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섬세하게 그려진다고 했다.

영화는 여러 사람이 포스팅해 놓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 마이클을 따라 칸에 왔던 앤은 컨디션 난조와 남편의 무관심에 지쳐 원래 계획된 부다페스트를 건너뛴 채 파리로 이동하려고 한다. 이때 자크가 자신과 함께 자동차를 이용해 프랑스로 이동하자며 제안하고, 망설이던 앤은 그와 함께 파리로 향한다.

사고와 생활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프랑스 남자와 미국 여자의 동행은 쉽지 않다. 앤을 사로잡기 위해 능청스러우면서도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로맨틱 '스윗가이' 자크와 그런 자크를 밀어내려는 도도하고 매혹적인 앤은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파리에 언제 가느냐고 묻는 여자에게 파리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고 능갈치게 말하는 남자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 둔 채 이야기는 마무리됐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정작 내 마음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된 후 한동안 깊이 몰입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통해 공감의 의미를 찾고자 했는데 왠지 집중할 수 없었다. 앤과 자크의 감정에 공감이라는 말을 얹어서 푹 빠져들 법도 한데 내용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평소에 익숙했던 방식이 아니어서였을까. 그 낯설고 어수선한 느낌은 어디서 왔을까. 

영화는 청각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에게는 자막으로 이해를 돕고, 시각에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는 음성으로 상황을 설명해 불편함을 없앴을 뿐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도입한 방식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어수선하다고 느꼈던 것은 배리어프리라는 옷을 입은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돼 있던 낯선 것을 향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낯선 것을 감수하지 않고 익숙한 것만을 따라가려는 습성이 무의식 속에 존재했다.

이런 내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서로를 배려하고 공감하려는 의미로 마련된 자리에서조차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에 반하는 감정을 앞세우다니. 이렇게 경직된 사고가 자신의 틀만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환경이나 달라진 제도에 대한 두려움이 어설픈 방어 기제로 작용해 내 눈과 귀를 덮었던 모양이었다. 

이 영화로 인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소한 차이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았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낯설고 복잡한 것으로 여긴다면 배리어프리라는 말은 의미가 없어지고 말지도 모른다. 이러한 운동을 불편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와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그랬을 때만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이 다 함께 공존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사고가 좀 더 유연해진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배리어프리 영화를 다시 감상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영화가 일반적인 방식과 조금 다르더라도 흐름을 좇아가다 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좀 더 많은 사람이 배리어프리 운동을 접해 그것에 익숙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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