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한반도 선사문화의 보물창고
울산은 한반도 선사문화의 보물창고
  • 김진영
  • 2021.03.2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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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울산탐구] 김진영 전무이사
김진영 전무이사
김진영 전무이사

# 선사문화에 집착하는 중국과 일본
한 방송사가 어설픈 역사의식 때문에 결국 드라마 방영을 취소했다. '조선구마사'라는 이름의 사극이다. 젊은 시절 세종이 국경부근에서 귀신을 쫓는다는 구마사에게 중국 음식을 접대하는 장면 등이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중국 음식이나 의복 등이 도마에 오른 것은 중국의 역사왜곡이 원인이다. 드라마 곳곳에 중국풍이 깔린 것도 문제다. 중국은 동북 3성 지역(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의 역사와 문화를 자신들의 역사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집요하게 벌여왔다. 

중국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은 소설에 가까운 일본서기를 근거로 임나일본부를 비롯한 온갖 용어를 동원해 고대사를 왜곡하고 있다. 단순한 왜곡의 문제가 아니다. 19세기부터 시작된 동북아시아 지역의 선사유적지에 대한 발굴은 오늘까지도 이어져 중국과 일본은 자신들의 발굴 성과를 자신들의 조상과 연결하는 작업으로 이어가는 중이다.

뿌리의 선점으로 인류사와 문화사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비록 그 근거가 조작되거나 미미하더라도 어차피 증명이 어려운 일이니, 우리가 그 뿌리의 주인이라고 선방을 치겠다는 전략이다. 바로 그 작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기간 추진했다. 개발 일변도로 달려온 우리는 역사 문제에서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저 멍 때리고 당할 뿐이었다. 

지난주 중국이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백두산 인근에서 약 2만년 전 구석기 시대 유물을 발견했다고 요란을 떨었다. 중국매체에 따르면 지린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시 난핑(南坪)의 두만강 기슭 공사 현장에서 대형 '돌날(Blade) 몸돌'이 발견됐다. 난핑은 북한 함경북도 무산과 도로 통상구(口岸)를 통해 연결되는 곳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몸돌에서 나뭇잎 모양으로 돌을 떼어내 돌날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에 발견된 돌날 몸돌은 길이 53㎝, 무게 16.3㎏인 원뿔 형태의 대형 흑요석으로, 돌조각을 떼어낸 자국도 14군데 있다고 한다. 한세기 전까지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선사문화의 원조라는 자긍심에 상처를 받았던 중국은 요하부터 적봉, 두만강변 등지에서 구석기 유물이 쏟아지자 눈빛이 돌변했다. 요동과 요서로 불리는 랴오닝성 일대를 뒤져 선사부터 고구려까지의 흔적을 샅샅이 쓸어 담았다. 지금 요란하게 포장한 랴오닝성 박물관에 가면 그 현장을 볼 수 있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 규슈나 교토 등 선사의 흔적이 나온 곳에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자신들의 뿌리를 포장하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 개발논리에 훼손과 유출 반복
선사문화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집착을 언급했지만 사실 우리의 경우는 너무나 다른 양상이다. 울산의 해안과 경남 사천, 강릉 등지에서 쏟아진 구석기부터 신석기에 이르는 선사시대의 유물은 압도적이었지만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발굴이 대형 사업을 위한 개발 전단계로 이뤄지면서 유물이나 유적이 나오면 덮어버렸다. 이와관련된 이야기는 몇 번을 나눠서 언급할 만큼 사연이 많지만 울산의 문제부터 짚어야 하기에 다른 기회가 오면 설명하도록 하겠다.

울산은 한반도에서 유독 선사문화의 다양한 모습들이 드러나는 몇 안 되는 지역이다. 선사문화 1번지라 불리는 대곡천은 암각화부터 석기문화, 토기 제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해안가는 말 그대로 선사박물관이다. 서생 신암리와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등지는 구석기부터 신석기 시대에 이르는 유물과 유적이 켜켜히 쌓인 문화재의 반도체다. 

어디 그 뿐인가. 검단리와 중산동 등지는 한반도 최대의 청동기 문화가 꽃핀 흔적이 수도 없이 묻혀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선사의 흔적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까. 그나마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되는 유물은 전국의 박물관에 흩어졌고 세간의 관심에서 먼 유적과 유물은 그냥 덮거나 방치됐다. 

가장 최근의 일을 이야기 해보자. 문화재청이 또 울산의 귀중한 고대유적지를 보존가치가 없다고 덮었다. 벌써 수십번째 벌어진 만행이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무수히 발굴된 울산의 선사시대 이후 주요 유적지를 파묻거나 밀어버리거나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만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다. 이번엔 울산 북구 체육시설 조성부지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사를 앞두고 실시한 문화재 조사에서 청동기 시대 집터와 유물이 나왔다. 울산문화재연구원이 시행한 지표조사 결과다.

이곳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터와 조선 시대 숯가마, 용도 불명의 수혈(땅 아래로 판구멍) 등 56기의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확인됐다. 또 청동기 시대 석부, 석촉, 석검, 무문토기, 조선 시대 자기 등 68점의 유물도 출토됐다. 발견된 유구는 울산 지역에서 자주 발견되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형태로,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을 두고 보존할 정도의 가치는 아니라며 덮었다. 흔하게 나오는 석물이나 토기가 핵심이 아닌데도 뭉갰다. 이 유적의 핵심은 평지가 아닌 산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집터다. 산지의 청동기 집터는 드물다. 보존가치가 충분하다는게 문화재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그냥 덮어라고 했다. 딱한 일이다.

울산의 구석기 유적은 가장 오래된 벼농사 유적과 구석기들이 발굴된 옥현주공아파트와 KTX울산역 공사 중 발굴한 신화리유적이 있다. 울산의 신석기시대유적은 황성동 세죽유적, 성암동유적, 신암리유적, 우봉리유적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황성동 세죽유적은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당시 사람들이 채취했던 조개류와 동물뼈, 도토리 저장공, 반구대암각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고래뼈 등이 확인됐다. 그 엄청난 유물이 쏟아진 현장은 어떻게 됐을까. 현장은 항만과 공장, 아파트와 주차장으로 변해 수천년 전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 신암리, 한반도 고대인들의 발원지 
대한민국 사람들, 아니 울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지만 울산은 선사문화의 보물창고라 불린다. 구석기부터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엄청나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집터나 유물은 3,000여기가 넘게 출토돼 단일지역에서는 최고의 선사문화가 묻힌 땅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보존이나 가치 창출은 초라하다. 국가지정문화재는 25건에 불과하고 시정문화재 68건과 시문화재자료 19건 등 총 112건의 문화재가 지정돼 있는 것이 전부다.

울산에서 첫 번째 고분군 발굴조사는 1961년 국립박물관에 의해 이뤄진 삼광리 유적이다. 여기서 동물무늬 굽다리항아리가 출토됐다. 토기에는 말을 비롯한 12마리 동물이 그려져 있다. 이 명품 항아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지난 2011년 울산박물관 개관 당시 이 토기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잠시 임대해 전시하기도 했다. 이 항아리는 삼국시대 토기를 대표하는 주요 유물이기 때문에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도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울산이 그런 곳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언급하자. 바로 신암리에서 출토된 여인상이다. '신암리 비너스'로 불리는 여인상은 서생 신암리에서 1974년에 발굴됐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선사시대 여인상은 울산 신암리와 함경북도 청진 농포 패총에서 확인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울산 세죽과 전남 완도의 패총에서도 각각 1점씩 출토됐지만 여인상이라 할 정도로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 여인상의 발굴은 단순한 유물의 출토가 아니라 선사문화의 전반적인 모습을 유추하게 하는 엄청난 문화적 자산이다. 이 여인상도 지금 울산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원본이 있지만 현장에는 선사문화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개발 우선에 밀린 우리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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