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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가 있다. 투우 경기와 플라밍고, 그리고 스페인 여인과 결혼한 후배다. 이 셋은 뜨거운 열정과 흥, 애환을 가졌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뜬금없이 후배를 들먹이는 것도 그의 입담과 바지런함이 투우 경기와 플라밍고 못잖은 묘한 끌림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스페인 여행 이상으로 이 후배로부터 얻은 지식이 많다. 

그중 하나가 투우 경기다. 투우 경기는 얼핏 보면 하나의 시나리오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3가지의 스테이션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창을 든 기마 투우사 '피카도르'의 등장, 꼬챙이를 든 보조 투우사 '반데릴레로'의 리턴매치,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마따도르'의 승부수다. 

먼저 '피카도르'는 창으로 황소의 목 부분을 찔러 출혈로 서서히 힘이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반데릴레로'가 등장해 황소의 어깻죽지에 상처를 내 체력을 고갈시킨다. 그런 후 붉은 천 뒤에 칼을 숨긴 '마따도르'가 나타나 황소를 흥분시킨 뒤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정수리를 찔러 마무리를 짓는다고 했다. 잔혹함으로 인해 지금은 동물보호단체의 반발과 함께 존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투우 경기의 구성과 흐름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투우사의 치고 빠지는 기만전술의 결정판이라는 점이다. 황소를 현혹하고, 흥분 시켜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 뒤 마지막 일격을 가해 승리를 움켜쥐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 하지만 황소의 입장에서는 불공정 경기의 '끝판왕'이라는 점이 매우 역설적이다.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하거나 그 내부를 교란시키는 흑색선전을 투우사 '마따도르'에서 유래한 '마타도어'(Matador)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마타도어'의 치명적인 위험성은 무엇보다 정치판에서 상습적으로 이용된다는 데 있다. 지금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재·보궐 선거운동도 마찬가지다. 서울과 부산에 비해 그나마 울산은 나은 편이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긴개긴이다. '아니면 말고'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네거티브 폭로전은 '마타도어'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나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 당해 있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쏟아낸 말이다. 

정말이지 '마타도어'를 꼬집는 그 어떤 말보다 강하게 뇌리에 박힌다. 특히 선거 막판에 이런 '마타도어'가 터지면 대처할 틈도 없이 그냥 당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당사자뿐 아니라 결국엔 유권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서글프고 갑갑한 노릇이다. 

요즘 LH사태로 불공정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정점에 치달은 듯하다. 꿈과 희망을 짓밟는 부조리 관행을 바로 잡아 달라는 요구도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그러나 정치인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다. 

선거 때마다 "반성한다" "바꾸겠다" 큰소리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정책과 비전을 덮어 버리는 것도 허탈감을 안겨준다. 상황이 이러니 '마타도어' 속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유권자들은 짜증과 피로감에 열불이 날 수밖에 없다. 

시대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꿈꾸는 정치인들의 이 같은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행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다. 오죽했으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여기저기서 울분을 토하겠는가. 그만큼 기본과 원칙이 무너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젠가 들은 얘기다. '자취불각득(自醜不覺得)', 즉 '취한 사람은 자기가 취한 것을 모른다'고 했다. 지금 정치인들이 딱 그 짝이다. 정치판의 '네거티브'나 '마타도어' 선거를 타파하는 방법은 지금으로선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과 적극적인 동참뿐이다. '하늘이 맑으면 그 빛깔을 품은 호수도 맑다'는 '통찰과 역설'의 머리말 제목이 더욱 생생하게 와 닿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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