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울산이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
선사시대 울산이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
  • 김진영
  • 2021.04.0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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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울산탐구] 김진영 전무이사
김진영 전무이사
김진영 전무이사

# 재일 고교생들이 외친 야마토
몇 해 전 구글의 지도 서비스에서 울산 태화강의 영문 이름을 일본어인 '야마토 리버'로 표기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울산시가 공식 항의하고 수정을 요구한 이 사건으로 야마토란 이름이 울산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기도 했다.

야마토는 일본 가나가와 현의 중부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이 도시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 대화(大和)인데 '태화강(太和江)'의 태화를 '대화'로 잘못 보고 번역한 오류였다. 그런 일이 있고 세월이 흘러 지난달에는 또다시 야마토가 새로운 뉴스거리가 됐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계기였다.

올해 93회를 맞은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에 처음 출전한 한국계 교토(京都) 국제고가 시바타고를 꺾고 2회전에 진출하면서 또다시 야마토가 부각됐다. 고시엔 대회의 전통에 따라 교토 국제고가 승리한 뒤, 상대 팀이 경의를 표하는 교가를 부르는데 바로 그 교가에 우리말로 야마토가 등장했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194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교토 국제고는 운영난을 겪다가 2004년 일본 교육법 제1조의 적용을 받는 학교로 전환, 사실상 '한일 연합' 학교로 유지되고 있다. 학생 수는 일본 국적 학생들이 60% 이상이고, 야구부원은 전원이 일본 국적이다. 한국 교육부와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 학교의 우리말 교가에 등장하는 야마토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우리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야마토는 일본인이 스스로를 부르는 민족 정체성을 담은 이름이다.

이 이름에는 한반도와 고대 일본의 관계를 알려주는 비밀이 있다.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에 들어가 나라를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지금의 고령(高靈) 일대에 정착한 '미오야마나' 사람들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들은 기원후 42년에 북방에서 남하한 기마군단에게 자신들의 거점을 빼앗긴 후 북방민족과 어울려 살다가 지배층의 한 무리가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열도로 흘러갔다.

그들이 새 정착지로 정한 곳이 바로 야마토다. 미오야마나가 야마토로 변한 스토리다. 이같은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모른채 일부 모자란 학자들이 한자를 잘못 풀이해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그 하나가 울산의 태화강과 기록으로 전하는 태화사까지 대화(大和)의 잘못된 표기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이들 때문에 왜의 어용학자들은 임나일본부까지 오버하는 해석을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 주장이다. 일본 땅에서 울려 퍼진 동해바다 건너 야마토땅이라는 지명은 결국 울산과는 관련 없는 지명이지만 한편으로는 먼 옛날부터 왜와 한반도 남쪽은 빈번한 교류가 있어 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전혀 무의미한 이야기는 아닌 듯 싶다.

# 석기문화 정점, 신암리 비너스상
지난주 칼럼의 마지막 부분에 잠시 언급했지만 울산의 석기시대 유물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것은 서생 신암에서 출토된 여인상(사진 오른쪽)이다. 일명 '신암리 비너스상'로 불리는 이 여인상은 울산시 서생면 신암리 유적 제2지구에서 1974년 출토됐다. 출토지역이 이름을 차용해 '신암리 비너스상'으로도 불린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선사시대 여인상은 울산 신암리와 함께 함경북도 청진 농포패총에서 확인된 것이 전부다. 물론 울산 세죽유적과 전남 완도의 패총에서도 각각 1점씩 출토되었지만 성별을 단정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토우는 울산 신암리 유적뿐만 아니라 수가리 유적, 완도 여서도 유적, 함경북도 청진 농포리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하지만 이들 출토품은 대부분 성별이 확실치 않고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한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신암리 비너스상은 유물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신석기시대의 조각품으로 추정되는 이 여인상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유물이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석기시대 여인상은 거의 없다. 신암리 비너스상의 경우 흙을 빚어 만든 것으로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몸체만이 남아 있다. 허리가 들어가고 왼쪽 가슴이 솟아 있어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물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세계 고고학계에서는 오스트리아에서 출토된 빌렌도르프(Willendorf)의 비너스(사진 왼쪽)를 여인상의 으뜸으로 친다. 가슴과 엉덩이를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는 이 여인상 역시 생식과 출산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빌렌도르프와 신암의 여인상은 구석기와 신석기를 대표하는 종교적 상징물이었을 것이라는 게 고고학계의 정론이다.   

# 여전히 땅 속에 남은 울산 석기문화
남쪽의 신암 바닷가부터 내륙의 신화리 일대까지 울산의 석기유적은 구석기부터 신석기까지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다. 하지만 울산의 석기시대 유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물론 한반도 지역의 석기유적이나 유물이 고고학계에 보고되기 시작한 것도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일천한 역사를 가졌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시작된 어용 일본 학자들에 의한 한반도의 고고학적 발굴이 임나일본부설을 짜맞추기 위한 고분 발굴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선사 고고학은 선사시대나 역사시대의 구분이나 체계적 발굴 등의 학문적 일정표는 염두에 없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울산의 선사시대 유물에 대한 조사와 발굴은 더 열악한 형편이었다. 애초에 고고학계에서는 울산을 경주의 한 변방으로 보고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1970년과 1971년 겨울, 대곡천에서 암각화가 쏟아졌다. 

암각화 발견 이후 전국의 대학 사학과나 고고학과 인류학과 등은 울산에 주목했다. 1970년대 이후 울산은 산업화의 기수로 근대화의 첨병으로 내달린 시절이지만 한편에서는 땅을 파고 뒤지며 선사의 흔적을 찾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해안가에서 석기유물이 쏟아졌다. 서생 신암리다.

신암리는 신석기시대 유물인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된 곳이라 일찍부터 취락이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선사시대 유적으로 신암리와 함께 주목받는 곳은 옥현지역과 신화리 일대다. 한반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벼농사 유적과 구석기들이 발굴된 옥현주공아파트와 KTX 울산역 공사 중 발굴한 신화리 유적은 석기시대의 한반도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 밖에도 울산의 신석기시대유적은 황성동 세죽유적, 성암동유적, 우봉리유적이 있다.

이 가운데 황성동 세죽유적은 신석기시대 초기의 유적으로 당시 사람들이 채취했던 조개류와 동물뼈, 도토리 저장공, 반구대암각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고래뼈 등이 확인돼 세상의 주목을 받은 곳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곳이 바로 신암리다. 여인상과 함께 출토된 신석기 유적은 놀라웠다. 기원전 6000년 이상 시기가 올라가는 융기문 토기가 그 주인공이다. 토기 표면에 돌기가 나 있는 융기문토기는 조기 신석기시대 가장 오래된 토기 유물이다.

무엇보다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 등장하는 흑요석의 출도는 충격 그 자체였다. 흑요석은 용암이 급속하게 굳어지면서 만들어지는 암석이다. 흑요석 돌날의 경우 현대 과학기술로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얇고도 날카롭다. 바로 그 흑요석의 출처는 화산지대로 원산지가 일본 남쪽과 백두산 뿐이다. 분석결과 울산의 흑요석은 일본이 원산지였다. 어떤 경로든 대한해협을 건너온 물건이다.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울산의 국제성이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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