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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영화 제목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는 27만 5,815명, 사망자는 30만 7,764명.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데드 크로스(Dead Cross)'가 나타났다. '인구의 자연 감소'에 대한 위기의 경고등이다. 1970년 공식 출생통계 작성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다. 정부의 전망 보다 무려 9년이나 빨리 인구절벽이 시작된 것이라 하니 놀랄 따름이다.

반면에 지난해 60대 이상 인구는 약 1,244만 명으로 전체의 24%에 달했다. 한 세대에서 인구 차이가 이렇게 큰 격차로 벌어진 경우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아기 울음소리가 뜸한 건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가히 충격적이다. 

급격한 인구 지형 변화가 총체적인 위기를 노출하고 있다. 극심한 저출산과 고령화에다 코로나19 위기까지 덮쳤으니 설상가상이다. 지난해 전국 50여 곳의 학교가 문을 닫은 게 그 방증이다. 이는 대학교 신입생 모집 미달 사태로 이어져 대학의 재정 한계상황을 양산할 게 틀림없다. 머지않아 임직원 실직으로 이어질 건 불 보듯 뻔하다. 대학가 주변 상권의 공실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 갖가지 사회·경제적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다. 향후 닥칠 일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미래가 그저 암울할 따름이다.

발단은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에서 출발한다. 물론 저출산 문제를 젊은 세대의 잘못으로 돌리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든 기성세대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중점을 두고 고민하고 정성을 들여 매듭을 풀어야 할 사안이다. 

필자에게도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아들 녀석이 하나 있다. 이참에 요즘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를 한번 알아보고 싶어 솔직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짐작했던 대로 가장 먼저 나온 얘기가 경제적인 문제였다.

폭등하는 부동산가격으로 내 집 마련의 희망이 깨진 게 그 첫 번째였다. 안정된 일자리 찾기가 갈수록 멀어지는 현실에 대한 허탈감이 두 번째였고, 자녀 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감이 그다음 순이었다.

자료 삽화. 울산신문
삽화. ⓒ왕생이

불평등과 불공정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빚어지는 빈부격차와 양극화에 대한 인내의 한계성도 한몫한다고 했다. '행여 사회 구성원으로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하는 위기감과 불안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시시각각으로 조여 오니 결혼과 출산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라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답변이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이들은 결혼보다 자기 계발이 우선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결혼과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을 겪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인생을 혼자서 편하게 즐기며 살고 싶다는 강한 욕망도 보인다. 결혼이란 제도에 묶여 이러한 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구시대적 유산인 남녀의 차별화된 삶을 대물림해 살기 싫은 생각이 깊이 깔려 있다고 본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며 참고 견디며 살던 부모의 삶 속에서 불합리함을 느낀 탓이 클 것이다. 부끄러운 전철은 이제 더는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것도 같다. 

문제는 이로 인해 생기는 자신감 결여가 결혼에 대한 두려움으로 표출된다는 데 있다. 기성세대들이 함께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다. 문득 몇 년 전 개봉된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른다. 영화 속 '김지영'은 가부장제, 남아선호사상, 성차별 등의 굴레에서 설움을 겪고 벽에 부딪힌다. 상처를 주는 이들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아버지, 할머니, 시어머니, 직장 상사와 동료들이다. 

"남녀차별, 정치가 해결할 수 있다"고 당시 상영회에서 당당하게 말하던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가 기억 속에 소환되는 건 이 때문이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도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안아 주시라'는 편지를 적어 책을 선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83년생, 84년생, 85년생…김지영'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영'의 꿈과 자유를 존중해주고 배려하며 지켜주는 것이 그들을 안아 주는 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먼저 나서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올바른 틀을 만들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신뢰도 쌓아야 한다. 그래야만 젊은 세대가 이 사회를 믿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잘 꿰서 정책으로 실현하는 것은 정부와 울산시의 몫이 되겠다. 

'아기 키우기 좋은 환경 만들기'는 결코 구호로 이룰 수 없다. 젊은 세대의 공감대 형성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그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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