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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극단 세소래 대표
박태환 극단 세소래 대표

이제 코로나19 대유행의 고통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일상도 어제와 오늘의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다.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들은 떨어져 살면서도, 서로 만날 수 없으면서도, 비슷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으로 비대면의 연대를 하면서 각자의 삶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일상이 통째로 바뀌어버린 코로나 시대 그 한가운데에서 전업 연극인으로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역에서 전업 연극인으로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생활인으로서는 힘들지 않았던 해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연극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자조 섞인 농담처럼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우리는 크게 체감을 못했다고 하면서 술잔을 주고받았던 생각도 난다. 그래도 항상 무대는 있었다. 많을 때도 적을 때도 있었지만 변함없이 관객들은 우리를 찾아왔다. 
 
연극은 다른 무대 예술과 마찬가지로 그 시간에만 존재하는, 찰나의 예술이다. 그런데 이 찰나의 예술인 연극이 관객들의 기억을 통해 영원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단 필자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무대 공연을 준비하는 모든 예술가들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은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우리는 그렇게 무수히 연습하고 다듬어가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극적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공연 완성도의 공정을 굳이 따지자면 연습 막바지에 만들어진 앙상블은 대략 50% 정도이다. 공연장에 가서 무대장치와 조명, 음악, 분장, 의상이 더해져도 80%를 넘을 수 없다. 어둠 속의 관객들과 만날 때 연극은 비로소 100% 완성된다.
 
그렇게 공연을 하면서 살았는데 지난해는 예고 없이 닥친 이 전염병으로 인해 절망의 기억만 가득하다. 두 번이나 연기되었던 울산연극제. 세 번의 일정 변경으로 한 작품을 무려 7개월간 띄엄띄엄 연습을 했다 멈췄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관객 없이 10월 7일 세종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던 대한민국연극제. 공연을 마치고 텅 빈 객석을 향해 커튼 콜 인사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었다. 대한민국연극제의 첫 공연이라 연극제 관계자들도 객석에 있었다. 그 사람들이 관객들이 아니었기에 배우들이 무대 위에 서있는 동안 객석의 불이 켜졌었다. 그 순간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던 한국연극협회 이사장과 눈이 마주쳤었다. 그나마 꾹 참고 있던 눈물이 짧은 탄식 같은 호흡과 함께 사정없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연극을 하는 우리들에게 객석의 관객은 우리의 존재를 증명 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임을 무대 위에서 그들의 부재를 통해 사무치게 절감했었다.
 
객석 거리 두기 좌석제로 공연을 했던 두 번의 공연과 관객 없이 공연을 한 후 온라인을 통해 상연했던 두 번의 공연이 지난해 필자가 속한 극단의 공연장상주예술단체 활동이었다. 상반기는 허둥지둥 한 채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못하다가 첫 공연을 7월에야 겨우 무대에 올렸었다. 적긴 했지만 그나마 마스크로 무장한 관객들이 있어서 연극이라는 예술의 본질은 다치지 않았었다. 공연이 끝난 후 객석의 관객들이 배우들에게 박수를 칠 때 무대 위의 배우들도 진심을 다해 극장을 찾아와준 고마운 관객들에게 박수로 화답하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었다.
 
그리고 이어진 관객이 없었던 두 번의 공연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가슴이 휑하다. 필자는 심하게 말하면 연극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관객들에게 넘어가면서 유효해지는 연극적인 메시지는 아직 못 부친 편지처럼 우리들에게 오롯이 남아있는 심정이니까. 이를 악물고 바락바락 다짐하듯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해야겠다고. 물론 그것은 나의 결심과 무관하게 결정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나의 결심이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치는 것이 한편으로는 비참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연극을 카메라로 찍으면 그것은 더 이상 연극이 아니고 관객들은 영화처럼 볼 수밖에 없다"라고 한 어떤 평론가의 말이 떠오른다.
 
필자는 연극 창작자이다. 때론 작가로, 때론 연출로, 때론 배우로 관객들을 만난다.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시대의 삶이 필자처럼 연극을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동기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한번 그 일련의 제작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려지길 소망한다.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진 공연이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꼭 관객이 가득 찬 공연장에서 관객들의 웃음, 눈물 그리고 그 떨리는 숨소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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