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선에 머물다] 고비의 시간
[詩선에 머물다] 고비의 시간
  • 김감우
  • 2021.04.2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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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의 시간
 
안상학
 
지나온 날들을 모두 어제라 부르는 곳이 있다
염소처럼 족보도 지금 눈에 있는 어미나 새끼가 전부
지나간 시간들이 모두 무로 돌아간 공간을 보며 살아가는 
황막한 고비에서는
그 이상의 말을 생각할 그 무엇도 까닭도 없으므로
 
남은 날들을 모두 내일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펌프가 있는 어느 작은 마을
사람이라곤 물을 길어 가는 만삭의 아낙과
뒤따라가며 가끔 돌아보는 소녀뿐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 황황막막한 고비에서는
굳이 그 이상의 말을 만들 어떤 필요도 없으므로
 
시간과 거리를 물으면 금방이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운전기사와 길을 잃어도 쥬게르 쥬게르(괜찮아 괜찮아)만 연발하는 가이드를 보면서 나는 모든 지나간 날들을 아래라 부르던 내 할머니의 시간에도 새겨진 게 분명한 몽고반점과, 싸울 때면 쥐게라 쥐게라(죽여라 죽여라) 악다구니를 쓰던 할머니의 지워지고 없는 몽고반점을 떠올리며, 고비에다 주막을 차리겠다는 사내와 쏘다닌 열흘 동안을 나는 모든 지나간 날들과 아직 오지 않은 나날들을 어제와 내일로 셈하며 동업할 생각을 해 보았다
 
△안상학: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年 11月의 新川'이 당선. 시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안상학 시선'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동시집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 평전 '권종대-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 시화집 '시의 꽃말을 읽다'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시에서 마두금 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흔든다. 흔들어 깨운다. 모래바람 부는 황량한 벌판을 걷는다. 앞으로 내디딘 발자국의 반 이상은 다시 미끄러지는 그곳은 바람과 침묵만 있다. 시간의 경계를 모두 지울 수밖에. 경계를 지우고 나니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 고비, '고비(Gobi)'는 '사막'이라는 뜻이고 그곳은 원래 바다였다고 한다. 안상학 시인의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에는 이 시 외에 몽골에 관한 시 다섯 편이 더 있다.

 거기서는 지나온 날들은 모두 어제가 되고 남아있는 날들은 모두 내일이면 충분한, 느리고 거대한 시간이 흐른다. 그 셈법에는 족보도 "지금 눈에 있는 어미나 새끼가 전부"가 되는 것이다. 더 이상의 논리도 필요 없고 더 이상의 말도 필요 없다. 
 고비의 시간은 "모든 지나간 날들을 아래라 부르던" 시인의 할머니가 말하는 시간과도 다르지 않다. 이 시를 읽고 있는 내 할머니, 내 어머니의 말 속에 살아있던 시간과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공통적인 '과거'였던 '아래'라는 시간 어딘가에 새겨졌을 몽고반점처럼.

 언젠가 내가 태어난 시를 물었을 때 어머니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저녁밥 먹고 나서 배가 사아알 아파 와서" 일곱 시도 아니고 아홉 시도 아닌, 술시도 아니고 해시도 아닌, 그 답변 이후로 나의 사주는 '사아알'이 되었다. '사아알'이란 오랜 시간, 배가 요동치게 아픈 게 아니고 '사아알' 아파온 時, 혹은 詩.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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