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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해마다 이맘때면 입가에 맴도는 동요 한 소절이다. 아동문학의 나침반 역할을 한 '동원 이원수' 선생이 어린 시절의 고향과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담아 동시 '고향의 봄'을 썼다. 여기에 '산토끼'를 작사·작곡한 이일래가 곡을 붙였다. 하지만 당시 마산 지역에서만 알려져 홍난파가 다시 작곡해 지금의 아리랑만큼이나 민족애를 느끼게 하는 동요로 애창되고 있다.
 
'고향의 봄'을 흥얼거리다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와 멀리 계신 어머니의 얼굴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리움이 우물처럼 깊게 배인 고향은 부모님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끗희끗 눈이 내려도, 가정을 꾸려 분가해 떨어져 살아도, 언제나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것은 부모님의 온유함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로 지칠 대로 지친데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고된 삶을 이어가는 현대인에게는 지금이야말로 부모의 그런 가족애가 가장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그 온기 하나만이라도 가슴에 품고 있으면 기꺼이 살아갈 힘과 용기가 생긴다. 그야말로 삶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물론 가족이란 것이 혈연만으로 국한할 수도 없는 게 요즘이다. 초저출산과 고령화가 지속되고, 다문화가족이나 1인 가구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증가함에 따라 가족에 대한 개념 역시 크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혈연 중심의 가족 형태를 고집하는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하는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최근 정부는 시대 변화에 부응한다면서 혈연·혼인 중심의 법적 가족 개념을 비혼·동거 가정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녀의 성(姓)도 '부성 우선' 원칙 대신 부모 협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건강한 가족제도의 해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세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너무 시기가 이르거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바라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가족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실로 중요하다. 다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주는 상처와 갈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가족 간에 받는 상처로 인한 아픔이 타인으로부터 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을 수 있다.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가족이란 이유 때문에 고충을 안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가족 간 갈등을 오랜 시간 지켜본 젊은 세대들이 전통적 혼인과 가족제도마저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사회현상이 아닐 수 없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가족들은 서로 친밀하게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갈등 요소를 원천적으로 안고 사는 환경적 요인을 갖고 있다. 관계가 더 깊어지고 더 친밀할수록 갈등의 내용과 폭은 확장되기 마련이다. 서로 사랑한다면 어떤 갈등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더 큰 고비를 겪을 수밖에 없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같기'를 바라고 '다름'으로 인해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에 따라 '다름'을 같게 만들 수는 없어도 '다름'에 적응할 수는 있다고 본다. 서로 어깃장만 놓을게 아니라 '존중과 신뢰'에 기반해 머리를 맞대면 접점을 찾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요즘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코로나19 확진자로 연일 우울한 분위기다. 하지만 영화 '미나리'가 반짝이나마 사는 맛을 느끼게 해줬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의 힘이었다. '미나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한다는 정이삭 감독의 말처럼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가족의 특성과 닮았다고 한다. 
 
그는 “미나리는 땅에 심고 1년은 지나야 잘 자라듯이 우리의 딸과 아들 세대는 행복하게 꿈을 심고 가꾸어 나가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힘든 갈등의 시간도 지혜롭게 잘 극복한다면 오히려 가족 구성원들의 선호와 경향, 그리고 가치관을 서로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때론 큰 소리로 윽박지르기도 하지만 / 평생을 어루만질 나의 가족들 / 그리울 땐 / 한달음에 달려가 끌어안을 / 가족이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강대환 시인의 시구가 다소나마 위안이 되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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