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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활 스님 정관암 주지 

'코로나19'라는 역병은 여전히 우리들 일상을 뭉개고 있다. 물러가기는 고사하고 변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종횡무진이다. 
 
지난해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비교적 안전지대였던 울산이 올해는 위험지역으로 방역당국의 걱정이 크다.
 
먼저 웃음을 잃어버리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사는 울산 시민 여러분이 하루빨리 활짝 웃으면서 부둥켜안는 기쁨의 그날이 돌아오기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두 손 모아 합장하고 기도 올린다.
 
산사에 오는 신도들이 하는 말이다.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은연중 모르게 사람을 멀리하고 기피하는 현상이 생긴다고 했다. 정말 큰일이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코로나19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음을 새삼 느껴본다"고 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종종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너는 과연 누구인가'를 되물으며 살수 밖에 없는 반성적 존재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출세와 권력을 좇아 외부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조용하게 관조하면서 사는 내부 지향적인 삶을 선호하기도 한다. 
 
불교의 역사 속에서도 많은 인간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존경받는 삶은 다름 아닌 보살의 길이다.
 
어쩌면 불교의 역사는 수많은 유무명의 보살들이 걸어간 삶의 궤적을 담고 있는 흔적들인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불교경전에는 무수한 불·보살들이 등장한다. 때때로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뛰어난 제자들에게 '너는 언젠가 부처가 되리라'라는 수기를 내리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불·보살들의 길을 걷겠다는 마음을 한번쯤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 있는 물음을 던지고 답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살고 있는 주변의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부처님 경전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올바른 불법을 제시하겠다는 서원들로 채워져 있다. 
 
어느 하나의 서원만이라도 일상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이미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 존재, 즉 불보살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보기로 하자. 이것이 보살이 지향하는 바이다. 거창하게 서원을 세운다고 할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남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작은 선행들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가 사는 주변이 불국정토가 될 것이다.
 
보살의 지극한 마음으로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것이라는 부처님의 수기를 받는 일이다. 말하자면 보살의 길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그 본질이 있다. 
 
기독교를 신학(神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불교는 인간학(人間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통칭하는 불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에서 출발하여 인간을 문제 삼다가 결국 인간의 문제로 회귀하는 종교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상관없이 여전히 인류 미래에 한줄기 희망이라는 빛을 던져 줄 수 있는 위대한 정신유산이다.
 
특히 보살의 자기희생적인 삶은 중생들의 탐진치(욕심, 성냄, 어리석음)가 만들어낸 혼탁한 세상을 정화시킬 하나의 도전적 이상이 될 수 있을 것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보석 중에 보석은 지금이라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보살의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살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이를 당장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보살 마음으로 살겠다는 다짐이 중요하다. 
 
그래서 한마디를 더 보태고자 한다. 오늘 당장 이웃을 만날 때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해보자. 내가 사는 주변이 해맑은 웃음으로 환해질 것이다. 또 기억 속 친구에게 밝은 목소리로 전화 한 통 이라도 해보자. 이것이 바로 보살행 실천을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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