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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문정영 
 
꽃을 꽃으로만 보던 절기가 지났다
계절이 꽃보다 더 선명하게 붉었다
그때 당신은 열리는 시기를 놓치고, 나는 떨어지는 얼굴을 놓쳤다
되돌려볼 수 있는 사랑은 흔한 인형 같아서
멀어진 뒤에는 새로운 채널에 가입해야만 했다
언제든 볼 수 있는 당신은 귀하지 않았다
공유했던 풍경은 채널 뒤로 사라져 가고
어느 날에는 두근거림이 달아나 버렸다
나는 캄캄한 시간을 스크린에 띄우고
당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지우기로 했다
사랑을 자막처럼 읽는 시절이 왔다
눈에 잡히지 않은 오래전 사람처럼 자꾸 시간을 겉돌았다
의자에 차분히 나를 앉혀두고
당신은 생각에서 벗어난 생각을 보고 있었다
느슨해진 목소리가 사랑을 끝내고 있었다
툭 툭 우리는 같은 의자에서 서로 다른 장면을
몸 밖으로 밀어내는 중이었다         
 
△문정영: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낯선 금요일' '잉크' '그만큼' '꽃들의 이별법' 등 계간 '시산맥' 발행인. 윤동주 서시 문학상 대표.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누군가는 말한다. 사랑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인 동시에 매 순간 인간을 고통 속으로 빠지게 하는 양면성을 지녔다는 것. 서로의 영향권 내에서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절망을 동시에 경험한다는 것. 그래 그런지 다시는 돌이킬 수 없고 되돌릴 수 없기에 '찬란한 환상'은 '일상의 빛' 속으로 서서히 소멸하여 희미하게 남는다. 그러나 되돌려 볼 수 있고 언제라도 볼 수 있기에 두근거림은 사라지고 언제든 꺼내어 자막처럼 읽어지는 사랑이란. 바로 넷플릭스의 운명이다.

 반세기도 더 전에 나의 오빠, 언니는 가설극장에서 또 다른 재미를 즐겼다. 영화를 보는 틈틈이 준비해간 옷핀으로 옆 사람끼리 묶어버리는 것이다. 새끼줄을 친 빈 논의 뒤쪽에 서서 넋을 빼고 영화에 빨려들던 사람들이 영화가 끝나고 자리를 뜨는 순간 홱 잡아 채이는 옆구리. 미혼 남녀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엉뚱한 사람끼리 묶어 놓은 민망의 혼란을 막판의 축제처럼 즐겼다고 했다.

 내가 사랑했던 영화는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가 주연한 '초원의 빛'이었다. 지금까지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무비다. 수많은 명화 중에 '초원의 빛'은 여전히 낡지 않은 감정을 돌아보게 한다. 찬란했던 고교시절, 양가 부모들의 반대로 첫사랑에 실패하고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찾아간 농장에서 재회하는 장면에서 가슴은 터질 듯 폭발한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애절한 눈빛, 그러나 그의 아이들을 보며 의지는 무너지고 아프게 성숙하는 사랑이 되는 것일까. 농장에서 마지막으로 돌아서며 나탈리 우드가 나직이 외웠던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이 그래서 유명해졌다고 했던가. 
 초원의 빛, 꽃의 영광, 그 시간들을 다시 불러 올 수 없다한들 어떠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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