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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 울산문인협회장

필자는 지난 14일에 '한글도시 울산 중구 선포식'에 참석했다. 훈민정음 반포 575주년이 되는 올해, 무지막지했던 질곡의 역사 속에서 우리 겨레의 얼인 말과 글을 온전히 지켜낸 외솔 최현배 선생의 탄생지 중구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리는 의미 있는 행사를 추진한 것이다. 일찍이 '언어와 민족은 운명을 같이 한다'는 말이 있거니와 그 나라의 고유한 언어 발전이 그 국민의 정신을 힘차게 하고 문화를 풍요롭게 한다. 
 
필자는 자국의 언어에 내 마음을 실어 표현 욕구를 달성하는 문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한글을 우리의 생각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세상 사람들은 인문학이라고 해서 흔히 문·사·철을 들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포함하는데 모두 인간의 삶과 본질을 다루는 분야다.
 
필자의 얕은 지식으로 정리해 보면, 역사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과거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것이며, 철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어떤 것인가?'라는 좀 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통찰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문학은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현실을 바탕으로 상상의 힘을 빌려 눈앞에 형상화하는 장르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표현의 욕구가 있다. 그 욕구에 대한 분출 방법이 음악과 미술과 연극과 무용이 다 다르지만 문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자를 매개로 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세상에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와의 소통이 가장 직접적으로 이루질 수 있다. 
 
미술이 색깔과 모양 등 시각적 방법을 동원해 화가의 뜻을 표출하고 음악이 청각에 호소하는 예술이지만 그 나라의 언어를 매개체로 해 사상과 감정을 드러내는 중심에 문학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문학가는 그 민족의 언어를 갈고닦고 순화하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저녁 6시에 오영수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그날 7시에는 울산예총에서 주관하는 '태화강 예술제' 개막식이 있었고 사진협회, 미술협회 등 다른 단위지회들의 작품전시와 함께 울산문인협회도 회원들의 글을 모아 시화전을 개최했다. 
 
필자는 이러한 일련의 행사를 접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의 시대에 과연 문학의 역할과 존재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먼저 생각난 것이, 문학은 코로나로 인해 절망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독자와의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테면 전광용이 소설 '꺼삐딴 리'에서 일제강점기에 변절을 일삼는 기회주의적인 인물을 통해 어려운 시대에 사회 지도층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했듯이. 그리고 김수영이 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서면서'에서 사소한 일에 분개하는 옹졸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했듯이.
 
이 시대의 문인의 사명은 좋은 글을 쓰는 것, 어떤 상을 탈 것인가 기웃거리고 좌고우면하기보다 세상을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절차탁마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울산문인협회는 등단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진정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야할 다채로움의 공간이 됐으면 한다. 세상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숨은 실력자들을 많이 발굴하고 영입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건전한 문학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아직 과거에 갇혀있을지도 모르는 고루한 일개 단체로부터 하루 빨리 환골탈태하는 것도 문협의 중요한 존재이유가 될 것이다. 
 

이제 울산은 선사문명의 발상지로, 고래와 연어와 황어가 뛰노는 짙푸른 강과 바다, 향가 '처용가'를 탄생시킨 고전설화의 공간으로, 오영수·서덕출 등 엄청난 문학적 자산을 보유한 자랑스러운 정신문화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역사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속에서 많은 시민들이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해 가치 있는 삶을 경험하고 향유하는 기회를 획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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