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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김씨 나라 연 김알지. U울림통(29)

 탈해왕 때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수풀에서 닭 울음 소리가 들려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걸려 있고 그 속에서 사내아이가 있었다. 

 이에 아이의 성을 '김(金)'이라 하고 이름은 '어린아이'란 뜻의 '알지(閼智)'라 불렀다. 이후 시림은 계림(鷄林)이라 불렸다. 
 김알지는 신라로 유입된 알타이계 북방민족(흉노족)이란 속설이 지배적이다. 

 이주민족 출신이었던 김알지는 6대에 걸쳐 신라에 뿌리 깊게 내리며 7세손 미추(味鄒) 이사금에 이르러 처음 김씨가 왕위에 올랐다. 

 신라 992년 동안 전체 56대 왕 중 38대가 내물왕계와 무열왕계 김씨가 번갈아 왕위에 올라 신라 왕조 주류를 이뤘다. 

 장창호 작가는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대한 주제로 신라 왕조 변천사에 대한 스토리를 짚어 본다. 

 석탈해는 사로국(斯盧國)에 대한 가야국의 입김에 벗어나 친 백제 정책을 내세웠고 이에 반해 박혁거세의 국가 창업(創業)을 도운 재상 호공은 친 가야계 세력을 업고 박씨 왕조와 협치하며 신흥 세력 김알지를 앞세워 역성혁명에 가담하지 않았나 반추 해본다.  

 박.석.김씨 3개 왕조가 번갈아 왕위에 오르다 김씨계가 두번째 왕위에 오른 제17대 내물(奈勿) 마립간(麻立干) 부터는 세습 왕조를 이루며 권력 다툼은 직계간에 이뤄진다. 

 장 작가는 1,200년간 왕조를 이룬 로마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 오래된 1,000년 신라 왕조사도 여러 차례 역성 혁명속에 흘러갔으리라 보며 스토리를 매듭 짓는다.  진행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석탈해왕때 신라 김씨왕의 시조 김알지가 발견된 황금궤작이 나왔던것으로 전해지는 경주 교동 계림과 계림 비각. 2021. 5. 1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석탈해왕때 신라 김씨왕의 시조 김알지가 발견된 황금궤작이 나왔던것으로 전해지는 경주 교동 계림과 계림 비각. 2021. 5. 1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계림과 경주 김알지 탄생기록비가 있는 계림 비각의 야경. 2020. 9 30 김대웅 제공
계림과 경주 김알지 탄생기록비가 있는 계림 비각의 야경. 2020. 9 30 김대웅 제공
경주 반월성 북향에 위치한 계림의 야경. 2020. 9. 30 김대웅 제공
경주 반월성 북향에 위치한 계림의 야경. 2020. 9. 30 김대웅 제공
계림에 바라본 첨성대의 야경. 2020. 9. 30 김대웅 제공
계림에 바라본 첨성대의 야경. 2020. 9. 30 김대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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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창호TV [30] 김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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