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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충신 박제상1. U울림통(32)

 신라 제19대 눌지(訥祗) 마립간(麻立干) 때 선대 왕이자 당숙인 실성(實聖) 마립간은 눌지 마립간의 동생 보해(복호,卜好) 왕자를 국교을 맺은 고구려(장수왕)에 볼모로 보내 버렸다. 

 눌지왕도 잦은 침략을 일삼던 왜국과 화친을 맺으며 미해(미사흔 未斯欣) 마저도 볼모로 잡혀 가버렸다. 

 이때  양산 태수 박제상이 근심에 젖어 있던 눌지왕을 위해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동생을 구해 내고 자신은 일본 왜왕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죽음을 맞이한다. 

 고구려에서 보해왕자를 먼저 구한 박제상은 부인과 딸의 얼굴도 보지 않고 왜국의 미해왕자를 구하러 울산 율포(울산 북구 정자항)에서 왜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박제상 부인과 두딸은 돌아 오지 않는 남편과 부친을 애타게 기다리다 숨져 그 넋과 흔적이 치술령(鵄述嶺,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과 경주시 외동읍 경계)의 망부석(望夫石)과 은을암(隱乙巖, 울주군 범서읍 척과리) 그리고 경주 사천왕사(경주시 배반동) 인근에 장사 벌지지(長沙 伐知旨: 돌 비석)에 남아있다.

 장창호 작가는 신혜경 시인의 시 '치술령 망부석' 낭독하며 세 모녀의 애절함을 노래한다. 진행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시 배반동 망덕사지 남쪽 남천 제방위에 있는 박제상 관련 비석인 장사 벌지지.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이 고구려 볼모로 잡혀 있던 왕의 아우 복호(卜好)를 구한뒤 집에 들리지 않고 바로 또다른 아우 마사흔(未斯欣)을 구하러 일본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박제상의 부인이 남편을 뒤쫓다 이곳의 강변에 길게 드러 누웠던 모래를 '장사(長沙)'라 하며 그녀를 부축해 데려가려 하니 다리를 뻗치고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여 그 자리를 '벌지지(伐知旨)'한다. 현재 이곳에 1989년 석굴암연구회가 세운 비석이 있다. 2021. 2. 7 김대웅 제공
경주시 배반동 망덕사지 남쪽 남천 제방 위에 있는 박제상 관련 비석인 장사 벌지지.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이 고구려 볼모로 잡혀 있던 왕의 아우 복호(卜好)를 구한 뒤 집에 들리지 않고 바로 또다른 아우 마사흔(未斯欣)을 구하러 일본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박제상의 부인이 남편을 뒤쫓다 이곳 강변에 길게 드러 누웠던 모래를 '장사(長沙)'라 하며 그녀를 부축해 데려가려 하니 다리를 뻗치고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여 그 자리를 '벌지지(伐知旨)'한다. 현재 이곳에 1989년 석굴암연구회가 세운 비석이 있다. 2021. 2. 7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과 경북 경주시 외동읍 경계에 해발 765m의 치술령(鵄述嶺)에 있는 망부석(亡夫石)의 모습. 신라 박제상의 부인이 이곳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다 숨져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다. 1997. 울산시 출처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과 경북 경주시 외동읍 경계에 해발 765m의 치술령(鵄述嶺)에 있는 망부석(亡夫石)의 모습. 신라 박제상의 부인이 이곳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다 숨져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다. 1997 울산시 출처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척과리 국수봉 아래의 사찰 은을암(隱乙庵)내 용왕각과 동굴 은을암(隱乙岩) 입구의 모습. 박제상의 부인이 치술령에서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 몸은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고 영혼은 새가 이곳에 날아들어 숨었다고 전해져 은을암이라고 한다. 1997. 울산시 출처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척과리 국수봉 아래의 사찰 은을암(隱乙庵)내 용왕각과 동굴 은을암(隱乙岩) 입구의 모습. 박제상의 부인이 치술령에서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 몸은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고 영혼은 새가 이곳에 날아들어 숨었다고 전해져 은을암이라고 한다. 1997 울산시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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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창호TV [33] 충신 박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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