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선덕여왕의 신비로운 세 가지 예측
[오디오클립] 선덕여왕의 신비로운 세 가지 예측
  • 장창호 극작가, 김동균 기자
  • 2021.06.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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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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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울림통] 장창호가 들려주는 삼국유사 (40)
선덕여왕의 신비로운 세 가지 예측. U울림통(40)

 진평왕의 딸로 신라 최초 여왕에 오른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 

 신라 골품제(骨品制)라는 신분제에 따라 성골계만 왕위를 이어가다 진평왕이 딸만 셋이어서 성골계 덕만(德曼)공주가 왕위에 오르니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다.  

 북으로 수나라가 멸하고 들어선 당(唐)나라 태종이 중국 문화 황금기를 이뤘고 고구려는 영류왕(榮留王) 그리고 백제는 무왕(武王)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진평왕은 일찍 후계 구도를 짜기 위해 선왕이자 숙부인 진지왕의 두아들 중 큰아들 용수(龍樹)를 천명공주와 작은아들 용춘(龍春, 음갈문왕 飮葛文王)은 덕만공주와 각각 혼인을 시킨다. 성골 왕위 계승제를 유지하고 사위도 왕이 될 수 있다는 남해왕의 유언이 있어 두 딸과 두 사위, 4명 모두가 왕위 계승 후보자가 되는 셈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용수와 용춘을 지칭하는 기록이 서로 엇갈리게 남아 있다. 특히 선덕여왕과 두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듭한 용춘은 진평왕에게 큰 주목을 받은 인물로 추정되며 심지어 단채 신채호는 '명목상 권위는 선덕에게 있을지라도 실권은 김용춘에게 있도록 했을 것'이라 했다. 국난을 이겨내기 위해 세운 황룡사 9층목탑을 신축하는 초대형 토목사업 책임을 용춘이 맡은 것도 무관하지 않다. 

 정략결혼으로 왕권 기반을 다지려 했던 진평왕 노력에도 첫 여왕이 된 선덕의 국정은 평탄치 못했다. 백제 무왕의 아들 의자왕(義慈王)은 신라의 대야성(경남 합천)을 함락시켜 백제의 최대 방어막을 무너 뜨리고 제상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은 난을 일으키나 김춘추·김유신 이끈 진압군에 명활산성으로 몰려 항전하다 궤멸 당한다. 

 장창호 작가는 나라 안팎 위기 속에서 선덕여왕의 세가지 지혜와 예지력을 보인 삼국유사의 ‘선덕왕 지기삼사(知幾三事)’에 대해 이야기 한다.
 
 첫번째는 당태종의 모란자병화 설화이다.
 당 태종이 붉은색∙자주색∙흰색의 세 꽃잎으로 된 모란 꽃그림과 씨앗을 석되 보내 주었다. 
 선덕이 그림을 보더니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했다. 이듬해 씨앗에서 자라고 핀 모란은 과연 향기가 없었다. 
 여성 통치자가 난것을 못마땅히 여긴 당 태종이 배우자가 없는 여왕을 나비 없는 모란을 그려 보내 조롱한것을 눈치를 챈 것이다.
 선덕여왕은 꽃 그림의 답변으로 사찰을 짓고 사찰의 이름을 '향기 나는 왕의 절'이란 뜻으로 분황사(芬皇寺. 국보 제30호)라 지칭했다.
 그리고 일연은 삼색 모란은 신라에 선덕·진덕·진성의 세 여왕이 있을 것임을 당제(唐帝)가 헤아려 맞춘 것이라고 한다.
 
 두번째는 옥문지사건이다. 
 궁성 서쪽 성진리 강가에 있던 영묘사(靈廟寺)의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 개구리들이 모여 3.4일간 울었다. 나라 사람들이 괴상스레 여겨 왕에게 여쭈었다. 
 왕은 급히 각간 알천(閼川)과 필탄(弼呑) 등에게 “잘 훈련받은 병사 2천 명을 뽑아, 빨리 서쪽 교외로 가라 명하니 부산(富山) 아래 여근곡(女根谷, 경주 건천읍 신평리)에 적병이 있을 것이니 잡아 죽여라.”라고 명령하였다. 
 과연 여근곡이 있고 백제 병사 5백 명이 숨어 있어 모두 잡아 죽였다. 
 훗날 신하들이 이일을 물으니 선덕여왕이 답하기를 
 노란 개구리는 병사의 형상이며 옥문은 여자의 상징으로 음(陰)이며 백색은 서쪽을 가리키므로 적군의 서방 매복을 알았다고 말 하였다.

 세번째는 왕이 자신의 죽을 날을 미리 예언한 이야기이다. 
 왕은  자신이 죽을 날을 예언하며 도리천(忉利天)에 묻어 달라고 일렀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냐고 물으니 낭산(狼山) 남쪽이라고만 답했다.
 왕은 과연 예언한 날에 세상을 떠나고 신하들은 낭산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 
 10년 후 문무왕(文武王)이 사천왕사(四天王寺)를 무덤 아래에 세웠다. 
 불경에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 하였으니 여왕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사천왕천과 도리천은 불교 경전에 존재하는 상상의 강이다. 
 사천왕천을 상징하는 사천왕사가 지어졌으므로 그 바로 위인 선덕의 무덤은 불경에 나오는 도리천이 되는 셈이다.

  밤하늘 별점으로 국운을 가늠했을 첨성대가 세워진 날 불길한 꿈을 남기고 선덕여왕이 숨지니 그 과정이 알려지지 않았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북 경주시 보문동 낭산(狼山) 아래에 위치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능의 모습. 2021. 1. 17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북 경주시 보문동 낭산(狼山) 아래에 위치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의 모습. 2021. 1. 17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인왕동  신라시대 천문관측소인 높이 약 9.5m 첨성대 (국보 제31호)의 야경. 김대웅 제공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축조된 경주 인왕동 신라시대 천문관측소인 높이 약 9.5m 첨성대 (국보 제31호)의 야경. 2020. 9. 3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선덕여왕 때 쌓은  경주 구황동 황룡사 구층목탑의 모형도. 2020. 12. 12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선덕여왕 때 쌓은 경주 구황동 황룡사 구층목탑의 모형도. 2020. 12. 12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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