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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산신이 지겨낸 화랑 유신. U울림통(42)

 삼국통일의 주역이자 신라 화랑(花郞)의 표상인 김유신(金庾信). 

 신라 법흥왕에 투항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해왕(仇衡王, 수로왕의 9세 손)의 증손이자 백제에 맞선 관산성(管山城) 전투에서 이겨 성왕을 처형한 김무력(武力)장군의 손자이다. 

부친 서현(舒玄)은 진흥왕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인 만명부인((萬明夫人)을 우연히 만나 첫 눈에 반했으나 숙흘종이 두 사람의 만남에 반대해 딸을 가두고 못 만나게 하려 했다.  락이 집에 떨어진 어느날 만명은 달아나 만노군(충청북도 진천) 태수로 발령 받은 서현과 함께 떠났다. 

 이때 진골계 시댁을 외면했던 성골계 친정 집안에 대한 설움이 신라 육두품 신분제로 집착이 이어졌는지 만명부인은 아들에게 혹독한 훈육으로 가르쳤고 유신랑은 달게 받아 석굴에 들어가 수도하며 신검(神劍)을 얻어 단석산(斷石山)에 올라 바위를 베었다. 

 장창호 작가는 풍월주(風月主) 화랑 유신이 세 산신이 위기에 처한 유신랑 설화를 연기하며 김유신 편을 이어간다. 

검술을 익혀 화랑의 리더격인 국선(國仙)에 오른 유신은 어느날 백석 낭도로 부터 적국을 염탐하자는 제안을 받고 길을 나서던중 우연히 세 명의 여자를 만나게 된다.  백석랑 모르게 숲으로 유신을 데려간 여자들은 산신(山神)인 나림(奈林, 경주 낭산)·혈례(穴禮, 청도 오리산)·골화(骨火, 영천 금강산)의 모습으로 변해 유신에게 백석은 적국 사람으로 유신랑을 꾀어 적지로 데려가려 한다며 말하고 사라졌다. 

 김유신은 백석에게 긴요한 문서를 잊고 왔다며 집으로 돌아와 백석을 잡아 문초하니 자신은 고구려 사람으로 국경의 강물이 역류하는 괴변이 생겨 고구려 제28대 보장왕(寶臧王)이 '추남(楸南)'이라는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니 "왕비가 음양의 도를 거스른 까닭에 이런 변고가 생겼다"는 점괘를 내놓았다. 

 노한 왕비는 왕에게 터무니 없는 말이라며 다른 것으로 시험 해보고 점괘가 맞지 않으면 추남을 중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왕은 쥐 한마리를 상자에 숨겨 놓고 추남에게 상자에 든것이 무엇인지 맞혀 보라 하자 추남은 상자 안에 쥐가 들어 있다고 말하며 쥐가 한 마리가 아닌 여덟 마리라 답한다. 상자를 여니 쥐가 한 마리뿐이라 추남은 결국 처형을 당하며 "반드시 다른 나라의 대장으로 환생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말겠다."라 말하며 저주를 내린다. 

 미심 쩍은 생각에 왕이 쥐의 배를 갈라보니 뱃속에는 새끼가 일곱 마리가 들어서 있었다. 그 날 밤 잠이 든 왕은 추남이 김서현 부인의 품에 들어가는 꿈을 꾸었고, 추남이 김유신으로 환생했다고 생각한 왕은 백석을 시켜 유신을 꾀어 죽이라 했다. 이야기를 들은 김유신은 백석을 죽이고 자신을 구해준 세 여인들에게 제사를 지내 그 은혜에 감사하였다. 

 춘추가 왕위를 이어 태종무열왕이 되자 셋째 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해 부마가 된다. 또 '대각간(大角干)'이란 최고의 벼슬까지 올라 가야계 신흥 귀족세력으로 부상하며 삼국통일 전선의 선봉장으로 나선다. 태종무열왕의 아들 문무왕(법민 法敏)과 동생 인문(仁問)과 김유신의 동생 흠순(欽純)도 외교전과 전장터에서 큰 역할을 해주었다.

 78세에 숨을 거두자 재매곡(財買谷)에 묻혔으나 제54대 경명왕(景明王)에 이르러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서를 받고 서산 모지사(毛只寺, 경북 경주시 충효동 송화산 松花山) 왕릉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에 최치원(崔致遠), 설총(薛聰)도 함께 배향돼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훼철되지 않았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시 충효동 김유신장군 묘의 모습. 묘앞 왼쪽에는 '신라 태대각간 김유신 묘'비와 신라 제42대 흥덕왕이 김유신 장군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면서 사후에 세워진 '개국공 순충장렬 흥무대왕비'가 오른쪽에 있다. 특히 흥무대왕비의 비문 중 끝자인 릉(綾)자가 비가 내리는 날이면 묘(墓)자로 보인다고 한다. 2021. 2. 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시 충효동 김유신 장군 묘의 모습. 묘앞 왼쪽에는 '신라 태대각간 김유신 묘'라 세겨진 비와 오른쪽에는 신라 제42대 흥덕왕이 김유신 장군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면서 사후에 세워진 '개국공 순충장렬 흥무대왕릉'라 쓰인 비 등 좌.우 양쪽 두개의 비가 있다. 특히 흥무대왕비의 비문 중 끝자인 릉(綾, 작은사진 왼쪽)자가 비가 내리는 날이면 묘(墓, 작은사진 오른쪽)자로 보인다고 한다. 2021. 2. 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신라 유신랑이 서라벌 서쪽산 석굴에 들어가 외세를 물리칠 힘을 기르던중 한 노인에게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받았다고 옛 문헌에 전해진다. 이칼로 산에 올라 바위를 베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 정상에 두 조각 난 바위의 모습. 2021. 4. 1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신라 유신랑이 서라벌 서쪽산 석굴에 들어가 외세를 물리칠 힘을 기르던중 한 노인에게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받았다고 옛 문헌에 전해진다. 이칼로 산에 올라 바위를 베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 정상에 두 조각 난 바위의 모습. 2021. 4. 1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통일전의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김유신 장군의 영정. 경주시 제공
경주 통일전의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김유신 장군의 영정. 경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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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창호TV [43] 김유신

* 오디오 상태가 고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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