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화랑
[오디오클립]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화랑
  • 장창호 극작가, 김동균 기자
  • 2021.07.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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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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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울림통] 장창호가 들려주는 삼국유사 (45)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화랑. U울림통(45)

 백제 성왕은 나·제 동맹에 힘입어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하류 옛 수도를 되찼으나 영토를 확장해가던 신라 진흥왕에 다시 빼앗겼다.

 성왕은 딸 소비 부여씨(小妃 扶餘氏)를 진흥왕에게 위장 시집을 보내 방심케 한뒤 가야·왜와 연합해 태자 창(昌, 위덕왕 威德王)을 선봉장으로 내세워 신라 관산성(管山城, 충복 옥천)으로 응징에 나섰으나 어이없이 매복해 있던 신라군에 붙잡혀 처형되고 머리는 신라 궁궐 계단에 묻히는 수모까지 당한다. 수많은 날을 절치부심하던 아들 의자왕이 신라 대야성(大耶城, 경남 합천)을 급습해 김춘추 사위이자 성주인 김품석(金品釋)과 부인 고타소(古陁炤)를 죽이고 그 시신을 옥중 죄인들의 발 아래 묻으니 부왕의 한을 되갚았다. 이일로 두 나라와 왕실은 서로 반감이 커지고 원한이 깊어져 되돌릴수 없는 관계가 된다. 

 5만 신라군이 사비성으로 향하는 길목을 백제군이 황산벌(黃山伐,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 산직리 산성에서 전열을 갖추고 막아 섰다. 무엇보다 처자식을 죽이고 비장한 각오로 전장에 나선 백제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는 수적 열세에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네차례 싸워 신라가 모두 패하자 화랑 반굴(盤屈)과 관창(官昌)이 이끈 별동대가 적진에 뛰어 들어 의기충천한 적군의 기개를 꺽어 보려 하나 모두 주검이 돼 돌아왔다. 반굴과 관창 그리고 장춘랑(長春郞)과 파랑(罷郞)은 모두 황산벌전투에서 숨진 10대 화랑들이었다. 

 장창호 작가는 백제 병사에 붙잡혀 끌려온 화랑 관창과 계백장군을 연기한다. 숨진 화랑 장춘랑과 파랑이 무열왕의 꿈에 나타나 백제를 향한 식지 않는 투지를 밝히자 왕은 어린 두 원혼을 달래기 위해 장의사(藏義寺)라는 절을 세웠는데 지금은 서울 종로구 신영동에 당간지주만이 남아있다. 

 전장터에 이슬로 사라지며 삼국통일의 밀알이 된 신라 귀족가의 화랑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2018년 오픈한 경주시 석장동 화랑마을의 전시관의 모습. 2021. 2. 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2018년 첫문을 연 경주시 석장동 화랑마을의 전시관 외부(사진 아래)와 내부의 모습. 2021. 2. 6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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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창호TV [46] 장춘랑과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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