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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품은 당나라를 몰아낸 문무왕. U울림통(46)

 무열왕의 태자 법민((法敏)은 일찍 전장터에 뛰어들어 삼국통일을 매듭지으니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이다.

 태자 법민은 백제 사비성을 무너트리고 의자왕의 태자 부여융(扶餘隆)을 땅에 꿇어 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예전에 너의 아비가 나의 여동생(김고타소)을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은 적이 있다.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골치를 앓게 했는데 오늘 너의 목숨이 내 손 안에 있구나!" 일갈하자 태자 융은 엎드린채 아무말이 없었다. 

 백제를 멸한 이듬해 무열왕이 죽자 왕위에 오른 문무왕의 앞날은 험난했다. 당나라가 신라에 넘긴다는 약속을 했던 백제 땅에 5개 도독부를 설치하고 당 유인원(劉仁願)과 1만 병사를 주둔시킨다. 당군의 무자비한 약탈에 민심이 들끓고 백제 부흥군도 토벌해야 했다. 

 심지어 한반도 전역에 식민통치 흑심을 품은 당은 신라 땅에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 설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문무왕을 계림주 대도독으로 임명하더니 취리산회맹(就利山會盟)으로 당나라에 끌려간 부여융을 불러 들여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 도독으로 임명하고 화친을 강요하며 백마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어이없는 굴욕 마저 견뎌내야 했다. 그 인내심 열매는 달았다. 당과 연합전을 펼쳐 대 고구려를 쓰러트린후 김유신 장군이 당군을 쫓아내 버린것이다.

 장장호 작가는 당나라 장안성(長安城)에서 화가 난 당 고종과 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의 만남을 연기한다. 

 20여년간 당나라에서 볼모(숙위 宿衛)신세로 정세를 살피던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金仁問)을 당 고종이 옥에 가두어 버리고 신라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간다. 옥중에 있던 인문을 면회하고 온 의상대사는 당의 침략 계획을 문무왕에게 고하자 왕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다 법사(法師) 명랑(明朗)을 불러 도움을 청하니 불교 종파 중 하나이자 밀교(密敎) 승려인 명랑은 선덕여왕이 잠든 낭산(狼山) 앞에 채색한 천으로 가건물을 짓고 사천왕사(四天王寺)란 절을 세운다. 그리고 유가승(瑜伽僧, 밀교 승려) 12인과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으로 신라를 공격해 오던 당 50만 대군과 전함들이 황해에 침몰 시켜 국란의 위기를 넘긴다. 

 전쟁도 치르지 못하고 군사를 바닷길에 읽은 당 고종이 사천왕사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악봉귀를 사신으로 보내 신라를 사찰하나 문무왕이 악봉귀에게 뇌물을 주고 망덕사(望德寺)라는 절을 지어 당 고종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사찰을 지었다고 전하며 사천왕사를 숨겼다. 그리고 문장가 강수가 탄원서 지어 보내니 당 고종이 탄복해 인문을 풀어주었다. 신라에서는 옥에 갇힌 인문을 위해 관음도량 인용사(仁容寺)라는 절을 지었는데 옥에서 풀려 신라로 오는 뱃길에서 인문이 숨져 관음도량에서 미타도량으로 바꿨다 한다. 인용사는 현재 첨성대와 계림 사이에 있는 인왕동사지이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의 일몰 모습. 2021. 2. 21 김동균 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신라 문무대왕릉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2021. 2. 21 김대웅 제공
경주시 양북면 문무대왕 수중릉 앞에서 휴일을 즐기는 시민들. 2021. 5. 8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시 양북면 문무대왕 수중릉 앞에서 휴일을 즐기는 시민들. 2021. 5. 8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통일전의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영정. 경주시 제공
경주 통일전의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영정. 경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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