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의 맏아들 정명(政明)이 왕위를 이으니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이다.
재위 기간 12년 중 삼국통일에 힘쓴 공신들은 힘이 커지자 견제하며 왕권 강화에 집중했다. 특히 즉위후 한 달만에 반란을 일으킨 장인 김흠돌(金欽突)을 처형하고 왕비 김씨도 출궁시켜야야만 했다. 외세에 맞서 힘을 합쳤던 귀족들이 삼국통일후 왕실 저항 세력이 되자 고구려.백제.말갈인들을 포용하며 군사력을 장악했다.
신하들에게 직무의 대가로 논.밭을 주던 녹읍(祿邑)을 없애고 재임 기간만 토지의 조세를 받을수 있는 관료전(官僚田)으로 전환했다. 귀족들이 군사력을 키울수 있는 경제 기반을 약화 시키기 위한 계책이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달구벌(대구)로 천도하려 했으나 이루지는 못했다.
신문왕은 동해 바닷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짓고 바다 용이 된 부왕 문무왕을 추모하였는데 바다용이 김유신과 합심해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 되면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하자 왕이 바닷가에 나가 용을 만나니 두손이 마주치면 소리가 나는 이치로 보배가 될 것이다는 예언을 듣게 되었다. 곧 왕이 이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어 부르니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올때는 맑아지는 신비한 피리였다.
신문왕은 왕권에 도전하는 신하들의 모반을 진압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고 언제 마음이 변할지 모르는 당나라와 바다 건너 왜의 침략에도 방비해야 했다. 마술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은 바닷가 수중릉이 보이는 이견대(利見臺)에 앉아 부왕에게 힘을 얻고 백제·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는 신문왕의 마음이 설화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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