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양읍성터 아래에 줄기를 나사처럼 감아 돌며 꽃을 피우는 '타래 난초'는 당뇨 약재로 물에 달여 마시기도 하지만 악성 종기에 생풀을 찧어 바르거나 말려서 가루를 내 참기름이나 바셀린 등에 개어서 바르면 빨리 치유가 된다. 꽃말은 추억. 소녀 혹은 가냘픈 소녀 같은 꽃이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울주군 언양읍성 성벽아래에 줄기를 나사처럼 감아 돌며 꽃을 피우는 '타래 난초'가 분홍빛 꽃을 피우자 하얀나비가 다가와 앉아 있다. 타래난초의 꽃말은 추억. 소녀 혹은 가냘픈 소녀 같은 꽃이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올해 들어 새로운 생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새벽 기상. 그리고 이어지는 언양읍성 산책.
언양에는 읍성이 있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거기다 언양읍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센트럴파크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난 거기가 부럽지 않다. 언양에는 읍성이 있으니까.

새벽에 읍성 산책을 자주 나가다 보니 농부가 된 기분이 든다. 밤새 다들 잘 잤는지 그새 올라온 녀석은 없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게 된다. 지금 언양읍성에서 단연 빛나는 존재는 타래난초이다. 북벽 쪽에 군락을 이뤄 자라던 타래난초는 잔디깎이 하고 전멸 당했다. 그러나 서벽 쪽의 타래난초는 건재하다. 

꽃 잔치가 펼쳐졌다. 나비는 새벽부터 분주하다. 타래난초 꽃을 따라 꿀 빨기에 여념이 없다. 후투티도 새벽부터 분주하다. 요즘엔 타래난초가 가득한 서벽 부근에 자주 나타난다. 후투티 식구는 이제 8명으로 늘었다. 타래난초가 늘어가듯 후투티도 해마다 식구를 불려가고 있다.
 

# 센트럴파크가 부럽지 않은 생태 환경
눈을 즐겁게 하는 식물과 동물이 읍성에는 참 많이 산다. 반면 코를 즐겁게 하는 식물도 있다. 쉽싸리. 한약명은 택란(澤蘭)이라고 한다. 택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원색한약도감'에서 '택(澤)이란 연못이나 습지에 자생한다는 뜻이며 난(蘭)이란 향기가 난초와 비슷하게 난다는 뜻으로 택란이라고 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름에 난이 붙은 식물들은 향기가 너무나 좋다. 대부분은 꽃향기가 그리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쉽싸리는 주로 잎에서 향기가 난다. 그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향기가….

이 향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헌산에 지천인 은방울꽃의 젊고 마냥 순수하기만 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순수 그 자체인 향기도 아니고 코가 뻥 뚫리는 박하의 강렬한 향기도 아니다.

쉽싸리의 향기는 수수한 다정한 아름다운 향기다. 은은하고 계속 곁에 머물고 싶게 하는 향기다.
 
# 눈·코를 즐겁게 하는 동식물의 천국
언양읍성은 쉽싸리가 살아가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다. 읍성에 사는 쉽싸리는 읍성을 가로지르는 도랑 가에 산다. 
 

쉽싸리가 잘 사는 환경에 대해 '한국식물생태보감'에서 '쉽싸리는 부영양 수질의 물이 흐르는 도랑 가장 자리 또는 습지 언저리에서 산다. 산업폐수나 축산폐수로 오염된 곳이나, 반대로 청정 수질의 물터에서는 살지 않는다. 생활하수 수준의 질소와 인 성분이 적절히 섞인 물터 근처에서 산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읍성에 살고 있는 쉽싸리의 주변 환경이 딱 그렇다. 

가지산과 고헌산에서 흘러온 맑은 물이 읍성 도랑을 따라 흘러간다. 그 도랑에서 요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빨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나물 씻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가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은 물을 계속 머금고 있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갖게 된 능력은 들어온 물을 잘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생 식물과 물가에서 살아가는 식물은 물을 정화 하는 힘이 강하다. 택란은 그런 힘을 갖고 있는 약초이다. 

지금은 한약의 효능을 이해하기 위해 성분을 분석하고 동물 실험을 통해 유효 성분들이 어떤 기전을 통해 효능이 나타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약물 분석과 실험을 통한 이해만으로 한약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옛 사람들이 한약을 이해하고 사용한 방법은 약을 맛보고 성질을 느껴보며 오랫동안 약초를 관찰하고 약초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숙고하여 인체에 투여한 결과, 약초의 힘이 인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관찰하고 기록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한 것이다. 읍성에서 자라고 있는 쉽싸리를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니 옛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쉽싸리는 산후조리에 자주 처방하는 한약이다. 쉽싸리가 지니고 있는 물을 잘 나가게 하는 힘과 물을 정화하는 힘이 꼭 필요한 때가 산후이다. 산후는 임신으로 인해 생긴 부기와 어혈이 남아 있는 시기이다. 이 부기와 어혈을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는 한약이 택란이다.

택란에 대해 '동의보감'에서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맛은 쓰고 달며 독이 없다. 산전 산후의 여러 가지 병과 몸 푼 뒤 복통과 아이를 자주 낳아서 혈기가 쇠약하고 차며, 허로병이 생겨 바짝 여윈 것, 쇠붙이에 다친 것, 옹종을 낫게 하며 타박상으로 생긴 어혈을 삭게 한다. 수택(水澤)에서 자라는데, 줄기는 모가 나고 잎은 박하와 비슷한데 약간 향기롭다'라고 하였다.

'아주 쉽게' 또는 '순조롭게'라는 뜻을 지닌 '쉽싸리'가 물가 옆에서 자라며 줄기에 고층아파트 처럼 하얀꽃을 피웠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아주 쉽게' 또는 '순조롭게'라는 뜻을 지닌 '쉽싸리'가 물가 옆에서 자라며 줄기에 고층아파트 처럼 층층히 하얀꽃을 피웠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김영덕 심호당한의원 원장 kyd120@hanmail.net
김영덕 심호당한의원 원장 kyd120@hanmail.net

 #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생명 터전
언양읍성에는 보물이 많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수생 식물, 습지 식물, 논밭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식물들의 보고가 언양읍성이다. 그 많은 보물 중 하나가 쉽싸리이다. 

'한국식물생태보감'에서 '농촌에서 쉽싸리 개체군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며 드물어지고 있다. 물을 머금은 땅이 변형되고 개발되면서 사라져 간다는 뜻이다. 습지 언저리에는 여러 가지 수리시설물이 있고, 심지어 물길조차 통제되는 콘크리트 수로가 만들어져 있다. 때문에 쉽싸리가 살만한 자연적인 서식처는 생기지 않고, 있었던 서식처조차도 사라졌다. 쉽싸리는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삶터의 지표가 되는 종이다. 쉽싸리 군락이 농촌과 산촌 여기저기에서 관찰된다면, 그곳은 여전히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생명의 터전이다'라고 하였다.

언양읍성은 그리고 언양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생명의 터전이다. 쉽싸리가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길 기원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것과 한가지이다. 김영덕 심호당 한의원장 kyd120@hanmail.net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