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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옥 울산시금연협회 사무국장

따닥따닥 빗소리 혼미하던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은 장맛비 그칠 낌새 하나 없는 어둠으로 가득합니다. 
 
“나의 삶은 어디 있는지?" “누굴 위해 살고 있는지?" 
 
울산에서의 타향살이 열 손가락 채워가던 친구의 질문이 불안한 눈빛과 일순간 냉랭해진 공기와 함께 바닥 저 아래로 무겁게 침잠합니다. 
 
얼마 전 시 공부를 하던 모임에서 질문을 즐겨 하시는 교수님이 시 속 시어의 뜻을 제게 물었지만 의미는 알겠으나 대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단어에 대해 배운 적도 없는데 왜 제가 의미를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했습니다. 이 경우는 살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인지를 묻자 교수님은 '사람이 배운 바가 없어도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良能(양능)이라 하고 깊이 생각한 바가 없어도 알게 되는 것 그것을 良知(양지)라 한다'는 맹자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알려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뭔가 알기는 알겠는데 딱히 설명이 되지 않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면 그저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의도하지 않은 마음과 행동, 세상살이에 良知(양지)와 良能(양능)으로 설명되는 것이 적잖구나 싶었습니다. 도덕적 판단과 도덕적 본능으로 설명이 되는 이 타고난 능력과 지혜만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 좀 아프긴 했지만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라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 가운데 자(字)인 良이 주는 의미가 새삼스러워 知와 能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의미를 콕 집어서 말할 수 없음에도 절로 아는 것이 허다한데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목적과 방향에 대해 길 잃은 질문을 하는 친구를 보니 그날따라 세상이 달리 보였습니다. 
 
묘한 돌림세상 '나는 너를 위해 살고, 너는 그를 위해 살고, 그는 그녀를 위해 사는데 그럼 그녀는 나를 위해 살려고 할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는 그를 이용하고 그는 너를 이용하고 너는 나를 이용한다면 나도 그녀를 이용해야 하는 건가' 라는 희한한 연결고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본성과 본성에 반하는 삶, 익숙하지만 쉽지 않은 고민거립니다.
 
이곳에선 내가 주인이고 저곳에선 당신이 주인입니다. 이 자리에선 내가 손님이고 저 자리에선 당신이 손님입니다. 높은 자리 낮은 자리 할 것 없이 연결하다 보면 결국 우린 한 통속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을 다른 사람의 삶으로 채울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이, 어우러져 산다는 것이 다른이의 삶으로 나의 삶을 채우는 돌려 막기를 한다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흔히 특별한 이벤트 없이 돌아가는 무미건조한 삶을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이라 합니다. 우리가 만든 말이긴 하지만 실제 다람쥐가 돌리고 있는 쳇바퀴는 그들만의 세상에선 필요가 없습니다.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설치류에게 우리의 세상이 선물한 비만방지를 위한 운동 기구일 뿐입니다. 비대해져만 가는 덩치는 줄지 않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이런 돌려 막기의 삶을 살면서 멀쩡한 다람쥐의 쳇바퀴를 계속 돌리며 한탄하고 있으니 아쉽습니다.
 
카드를 돌려 막고 대출을 돌려 막고 가상화폐를 돌려 막고 각종 신종 돌려 막기에 결국엔 삶도 돌려 막습니다. 누구를 위해 살던 삶이 누구를 이용한 삶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고 그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가끔 포기를 택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이러한 상황을 똑바로 보고 바꿀 수 있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진정한 良知(양지)와 良能(양능)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만약 인생 1막을 마무리하는 여러분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다면 회사를 위해 뼈 빠지게 고생했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참고 살아 고달팠고 그래서 한탕주의에 빠졌으나 공허한 삶이었다는 내용 보다 소소하지만 자신의 삶을 위해 고민하고 무언가를 시도하였고 나름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이었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해 각자를 위해 무엇을 하고 살았던가. 정말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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