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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해 전 언론인·영어번역작가
박환해 전 언론인·영어번역작가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대법원 최종 선고공판이 오늘 열린다. 2심에서 선고된 징역 2년이 확정되면 지사직을 잃는 것은 물론 한동안 선거 출마 자격도 잃게 돼, 세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지사의 혐의는 크게 불법 댓글 조작과 선거법 위반으로 요약된다. 지난 대선 때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과 댓글 프로그램 '킹크랩'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지방선거 때까지 계속해 주는 대가로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했다는 게 당시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판단이다. 

당초 1심에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김 지사는 5년이 구형되자 "나는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비서관"이라고 외쳤다. "노 전 대통령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늘 처신에 주의를 기울여 왔는데 드루킹 같은 인물과 불법을 공모했겠느냐"는 취지의 항변이다. 위기에 처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게 보통 사람들의 심정일 것이나 이 말엔 감동보다 오히려 열 받는 이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당시 기사에 달린 댓글은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을 언제까지 팔아먹고 살 거냐'는 분노와 조롱이 압도적이었다. 친노·친문이나 중도 성향 인물까지도 '자기가 잘못한 일에 왜 노무현을 끌어대느냐'며 김 지사의 발언에 불쾌해했다. 노 대통령을 심히 욕보였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이는 문제에 가장 크게 부담을 느껴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신'을 유산 삼아 집권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요즘 정치는 노무현 정신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듯하다. 계승해야 할 순수한 이상에서 이미 멀어졌고, 이념에 갇힌 모양새다.

노무현 정신은 반칙이 없고, 불법에 저항하며 주변의 잘못을 자기 문제처럼 수치스러워하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이 있어야 의로움이 생긴다'는 맹자의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현시점에서 문제는 문 대통령과 그의 주변에 도무지 노무현의 수치심이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노 대통령 임기 초, 최도술 비서관이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터지자 "그에게 잘못이 있으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국민들은 나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도덕적 신뢰만이 국정을 이끌 밑천"이라며 "나의 재신임을 국민에게 묻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말았다. 가히 노무현식 접근법이다.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문 대통령은 그동안 측근들의 각종 비리·비위 연루 의혹 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또 해결 의지도 없는 듯해 보인다. 이런 태도는 노무현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같은 당 출신이면서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주말 보수성향의 한 울산지역 출향 인사는 "나는 보수우파지만, 노 대통령이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정치 성향을 떠나 부끄러움을 알고 책임지려 했던 노무현의 정치를 새롭게 보게 됐다는 얘기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나칠 정도로 측근의 불법·비리에 민감했다. 법적 판단보다 훨씬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댔다. 특히 핵심일수록, 실세일수록 더 엄격했다. 거기에다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내로남불'식 사고방식은 끼어들지 못했다. 오히려 과도하게 책임지려 한 나머지 노무현 정치는 위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한테도 찾아볼 수 없이 측근에게 관대하고 핵심일수록 보호하며 실세에게 침묵하는 언행을 보여온 건 이미 상식이 된 지 오래다.

필자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지난 1990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에 '야합'이라며 거세게 항의하던 그의 당돌하기 까지한 목소리가 오늘 아침 귓전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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