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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무와 상처 
 
김형로
 
나무를 자주 바라봅니다
상처 없는 나무는 없으니까요
 
사라진 가지는 옹이로 박혀 있고
둥치는 패고 균형 안 맞는
늙은 몸피의 나무를 더 자세히 봅니다
 
내 몸에 이런저런 흔적이 늘어갑니다
나무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큰 나무 곁에 무연히 기대봅니다
수고 많으셨다
잠시 다녀가는 내가 인사합니다
 
놀랐을 겁니다
엊그제 작은 아이였는데…
 
당신을 보듬으면
말 없는 위로가 수액처럼 퍼집니다
 
내 마지막 집은 상처 많은 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김형로 시인: 경남 창원 출생.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2017년 '시와표현' 신인상.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전 '부산일보' '경향신문' 기자. 현재 부산작가회의 회원. 부산시인협회 회원. 시집 '미륵을 묻다'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내가 아는 나무는 껍질이 두껍다. 웬만해선 상처가 드러나지 않는 체질로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지금껏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며 기대고 싶을 만큼 깊어간다. 점점 커다랗게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범하면서 아주 작은 것에도 살랑살랑 감정을 보인다. 5월이 되면 이 나무는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천천히 쉬는 것도 같고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즐기는 듯 여유롭게 사람을 내려다본다. 그래서 흉터가 잘 보이지 않는 걸까. 아니 내가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무릎이 튼튼해졌고 패진 몸에 이끼가 들앉은 상처도 좋았다.  
 
 내 몸에는 보이는 흉터만 해도 숱하게 널려있다. 아토피로 긁어댄 흉터부터 담벼락에 버려진 사기에 찍힌 무릎, 어른들을 따라 낫을 잡고 보리를 베다 새끼손가락을 찍어버린 불룩한 흉터며 물바께스를 이고 가다 떨어뜨려 손가락 하나가 뭉툭해졌고 까분디(진드기일종)에 물려 부스럼이 된 흉터가 종아리에 꽃처럼 피어있다. 칼에 베이고 불에, 다리미에 데인 흉터 등등 이것뿐일까. 마음의 흉터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 
 
 시인이 그러하듯 나도 나무를 점점 사람처럼 대하게 된다. 옆집 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어른이 되는 것을 본 것처럼 안부를 묻고 불필요한 질문을 하며 친구가 되어간다. 속이 얼마나 야물고 단단한지를 알아가는 중이다. 나무와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서로를 얻어 위안이 되는 셈법이 맞게 된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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