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52. 경덕왕의 아들 욕심
[오디오클립] 52. 경덕왕의 아들 욕심
  • 장창호 극작가
  • 2021.07.21 12:03
  • 0
  • 온라인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U울림통] 장창호가 들려주는 삼국유사 (52)

 성덕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헌영(憲英)은 형인 효소왕이 아들 없이 숨지자 왕좌에 올랐으니 신라 제33대 경덕왕(景德王)이다.
 
 불국사, 석굴암 등을 지으며 신라 불교 문화의 꽃을 피운 경덕왕은 삼모부인(三毛夫人)과 결혼해 아들을 얻지 못하자 왕비를 출궁시키고 만월부인(滿月夫人) 김씨를 새로운 왕비로 맞아 들인다. 하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위의(威儀)가 있는 승려(영복승榮服僧)를 찾아 모셔오라 하니 때마침 경주 남산 삼화령(三花嶺)에서 미륵부처에께 차 공양을 마치고 돌아오던 스님 충담사(忠談師)와 마주하게 된다. 충담스님은 화랑 '기파'를 위해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지어 나라 안팎으로 크게 신망을 얻고 있었다.

 장창호 작가는 경덕왕이 차를 올리는 충담스님에게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시를 지어 달라 청하는 대목을 연기하며 향가 '안민가(安民歌)'를 풀어 읊는다.

 임금은 믿음직한 아비요
 신하는 자애로운 어미라 
 백성은 칭얼대는 아이지만 사랑 주는 이를 알아 보네
 어렵게 힘들게 사는 이
 그 사람을 먹여 살린다면 
 이땅 버리고 어디로 갈까 
 나라를 가꾸는 길 알고 싶다면

 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내내 어울려 행복하네 
 ...

 경덕왕은 시에 매우 흡족해 하며 이후 나라도 편안했다. 그런 그에게 근심이 하나 있었으니 오래도록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날 왕이 도법((道法)에 능한 표훈대덕(表訓大德)에게 말하기를, 아들이 없으니 하늘의 상제(上帝)에게 부탁해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했다. 표훈대덕이 하늘로 올라갔다와서 아뢰기를 딸은 얻을 수 있지만 아들은 안 된다고 대답했다. 왕이 다시 표훈대덕에게 딸을 아들로 바꿔달라고 부탁하자, 표훈대덕이 하늘을 갔다와서 상제가 될 수는 있지만 아들을 얻으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전했다. 

 경덕왕은 비록 나라가 위태로워져도 아들을 얻어 왕위를 계승하게 하겠다고 말했으며, 이후 만월부인이 임신해 아들을 낳았다. 경덕왕은 태자가 8살 때 사망했고, 어린 태자가 왕위에 올랐으니 곧 혜공왕이라 한다. 혜공왕은 자라면서 여자 아이 놀이만 즐기고 비단 주머니 차기를 좋아했다고 전하고 있다 .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일제강점기 1924년 경주 남산 동남산 자락 입구에서 출토된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의 본존불이 출토된 당시 모습(흑백 사진)과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2개의 협시불과 함께 전시중인 삼불상. 땅속 석실에 있던 불상이 출토된 이곳은 '전 삼화령'으로 남산 금오산과 고위산 사이의 현재 삼화령(三花嶺)과 구분 지으며 또다른 삼화령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통일신라시대 충담스님이 이곳 삼화령(전 삼화령)에서 미륵불에게 차 공양을 올리고 가는길에 경덕왕을 만나 향가'안민가'를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진= 문화재청,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일제강점기 1924년 경주 남산 동남산 자락에서 출토된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의 본존불이 출토된 당시 모습(흑백 사진)과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2개의 죄.우 협시불과 함께 전시중인 삼불상.
 통일신라시대 충담스님이 삼화령 미륵불에게 차 공양을 올리고 가는길에 경덕왕을 만나 향가 '안민가'를 지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으나 그 위치가 알려지지 않아 삼화령으로 추정되는 곳이 모두 두 곳이다. 땅속 석실에서 불상(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이 출토된 '전 삼화령'과 이후 남산의 금오산과 고위산 사이의 연화대좌가 있는 삼화령이다  . 2020.12.12 (사진= 문화재청,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이 출토된 곳. 2021 2. 27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때 생의스님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나를 꺼내어 안치해 달라'고 말해 스님이 그곳을 찾아 땅을 파보니 돌미륵이 나와 이 미륵상을 삼화령에 안치하고 생의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전한다. 이에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이 출토된 곳을 삼화령으로 보고 있다. 2021 2. 27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1925년 4월 일제강점기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지면서 본존불 석상의 코가 파손 되었다. 김대웅 제공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1925년 4월 일제강점기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지면서 본존불 석상의 코가 파손 되었다. 김대웅 제공
지난 2018년 4월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으로 복원된 경주 교동 월정교의 야경. 신라 경덕왕 19년(760년)에 지어졌으나 조선시대에 유실되었다. 삼국사기에 궁궐 남쪽 문천(蚊川) 위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개의 다리가 놓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2020. 9. 30 김대웅 제공
신라 경덕왕 19년(760년)에 지어졌으나 조선시대에 유실되었다 지난 2018년 4월 국내 최대 규모 목조 교량으로 복원된 경주 교동 월정교(月淨橋)의 야경. 충담스님이 경덕왕을 만나 '안민가'를 지은 장소가 월정교와 통하는 신라 왕궁 월성 서쪽문인 '귀정문' 인근으로 전해진다. 2020. 9. 30 김대웅 제공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에 위치한 경덕왕릉의 모습. 김대웅 제공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에 위치한 경덕왕릉의 모습. 김대웅 제공

▶ 울산신문 오디오클립 'U울림통' 바로가기
 ▶ 영상 보기 : 장창호TV [54] 경덕왕의 아들 욕심


 

로그인을 하면 편집 로그가 나타납니다. 로그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울산신문은 여러분의 댓글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침해.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는 댓글. 도배성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위배되는 댓글은 삭제 될수도 있습니다.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