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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수필가
이지원 수필가

여름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대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낮에는 너무 뜨거워서 해 진 뒤에 공원을 찾게 된다. 청회색 저녁하늘 아래 산책길 양쪽으로 늘어선 잎사귀 무성한 나무들이 위로 옆으로 쭉쭉 뻗어 녹색 터널을 이룬다. 그 속에 들면 나무가 뿜어내는 청량한 공기에 하루의 피로가 싸악 가시는 것 같다. 

울산(蔚山)은 예로부터 숲이 울창하고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이었다.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아름다운 땅 위에 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공장에 취업을 했다. 농사를 지을 때와는 달리,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받는 재미에 정작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줄 몰랐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울산의 원주민이 아닌 이주민이다. 울산에 뿌리를 내린 지 삼십 년 가까이 됐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을 당시 울산을 떠올리면 '공기 나쁜' 회색빛 공업도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석유화학단지에서 내뿜는 유해한 연기들, 안전사고가 수시로 일어나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였다. 

뉴스에 울산의 사고 소식이 나오면 안부를 묻는 어머니의 전화가 어김없이 걸려 왔다. 고향을 떠난 딸이 걱정이 됐던 것이다. 나 역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정을 붙이려니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도 흘러 지금은 제2의 고향이 됐다. 그렇게 여기게 된 것이 비단 흐르는 세월 때문만은 아니었다. 

울산이란 도시가 공업도시에서 생태도시로 탈바꿈을 하면서 살고 싶은 도시가 됐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울산대공원의 역할도 한몫을 했다. 

울산대공원이 조성된 지 이제 막 이십 년이 지났다. 당시 KBS의 <열린음악회>가 울산대공원 오픈 기념 축하 공연을 했다.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이 모여 축하자리를 빛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사이 어린나무들이 쑥쑥 자라 무성한 숲을 이루고, 계절마다 꽃이 피고 지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 운이 좋아 길만 건너면 공원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살아서 내 집 앞마당 드나들 듯 자주 찾는 곳이 되었다. 

울산대공원은 전국에서 가장 큰 도심공원이다. 울산광역시에서 석유화학 공장을 오랫동안 운영해온 SK그룹이 지역에 대한 사회공헌 차원에서 10년간 약 1,050억원을 들여 조성해 울산시에 기부채납한 공간이다. 규모가 369만㎡에 이르며, 시설만 따져도 87만㎡다. 규모만 보더라도 그야말로 대공원이라 할 수 있다. 

울산대공원 정문 입구에 들어서면 큰 호수가 있고 주변에는 수영장 등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동문 방향 1차 공원으로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조성돼 있으며 남문 방향의 2차 공원에는 계절마다 색색의 꽃밭이 펼쳐진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에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울산시민들은 이곳을 보통 '대공원'이라 부른다. 

대공원이 생기기 전에는 휴일이 돼도 울산시민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경주로 양산으로 나갔다고 한다. 울산에 대공원이 생기고 난 뒤, 시민들의 삶의 질이 훨씬 좋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마을에 노인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했다. 연륜에 쌓인 삶의 지혜를 이르는 말이지만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검색할 수 있는 요즘은 조금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색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반드시 있다. 도심에 오래된 공원이 있다면 그 도시는 이미 품격을 지닌 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연륜에서 묻어나는 삶의 지혜처럼.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개발된 울산은 공업도시로 시민들의 생활이 윤택해지고 잘 사는 도시가 됐지만 삭막하고 '공기 나쁜' 공업도시라는 오명도 함께 따라왔다. 회색빛 공업도시에서 화사한 생태도시로 바뀌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래 세대를 위해 더욱 울울창창한 울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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