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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산 정상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동쪽 산군.
문복산 정상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동쪽 산군.

문복산(文福山)은 영남알프스의 1,000m 고봉 중 최북단에 있는 막내 격인 산이다. 낙동정맥이 서서히 남하하면서 영남권에 접어들고, 고헌산에서 한숨을 고른 뒤 외항재를 지나 낙동정맥의 분기점(894.8m)에 이른다. 
이곳에서 한 줄기는 운문령을 넘어 영남알프스의 주봉인 가지산에 다다르고, 다른 한 줄기는 북쪽으로 허리를 틀어 학대산을 지나 문복산을 이룬다. 문복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 땅 이름 큰사전에는 
문복(文福)이라는 승려가 이 산에 들어와 평생 도를 닦고 살았다 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문복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문복산 서쪽 사면 골짜기, 개살피계곡에는 가슬갑사(嘉瑟岬寺)유허비가 있었으며 신라 원광법사가 
삼국통일을 이룬 기본이 되는 세속오계를 화랑(귀산과 추앙)에게 내려 주었던 장소로 기도 도량이자 화랑들의 군사 훈련장이었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문복산에 오르는 대표적 등산로는 3곳으로 알려져 있다. 

드린바위 감상할 수 있는 최단 코스
중리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문복산 등산로 안내판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대현3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마을회관을 지나 전봇대가 있는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문복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5분 뒤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오른쪽 문복산(1.7㎞)·드린바위(1.5㎞) 이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길을 따라서 40여 분 정도 오르다 보면, 문복산 드린바위 방향과 정상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 도착하게 된다. 좌측은 눈의 호사를 누리며 드린바위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경사가 가파르고 뚜렷한 길 표시가 없어 산행경험이 많은 사람만이 주로 이용하는 등산로이며, 우측은 완만한 능선길로 2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운문령에서 출발 오르는 길
운문령은 울산시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지금은 운문 터널이 관통되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울산에서 청도를 가려면 이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이 고개를 '구름재'라 부르기도 했다. 겨울철 눈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 고개를 넘기란 그리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니었다. 운문령에서 출발. 문복산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왼쪽. 이곳은 낙동정맥이 이어져 오는 구간(25)으로 종주 산행을 이어가는 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헬기장을 지나면 능선은 아주 부드럽게 이어지고, 문어발 모양으로 멋지게 뻗은 소나무가 있는 쉼터를 지나 낙동정맥 표지석(894.8m)이 세워져 있는 분기점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고헌산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눈앞으로 문복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부터 길은 완만 해진다. 이렇게 이어지는 능선길은 2㎞ 가량 이어지고, 2시간 정도 걷다 보면 문복산의 전진 봉인 964봉에 올라선다.

드린바위
드린바위

개살피계곡 가로지르는 세 번째 코스
자동차로 운문 터널을 빠져나와 운문산 자연휴양림을 지나면 조금 뒤 칠성슈퍼와 천문사(天門寺)를 알리는 커다란 돌 표지석이 눈에 띈다. 삼계리 마을이다. 삼계리 마을은 세 갈래의 물줄기가 합수하는 마을이라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즉 운문령에서 발원하는 생금비리 계곡, 배너미재에서 발원하는 배너미계곡, 문복산에서 발원하는 개살피계곡의 세 갈래 물길이 합수하는 지점에 있다. 산행은 마을 오른쪽 계곡을 따라가면 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계곡을 개살피계곡이라 부른다. 개살피계곡은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하다. 특히 여름 계곡 산행지로는 고헌산 주계곡을 능가할 뿐 아니라 영남알프스 계곡 중에서도 손꼽을만한 곳이다. 개살피계곡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지도상에는 '계살피계곡'이라 표기되어 있고, 삼계리 사람들은 '계피계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상에는 '게살피계곡'이라 부르는 사람이 많다. '개살'은 '가슬'의 방언이고, '피'는 '옆'의 방언이다. 또 청도군 홈페이지에는 개살피계곡'이라 부르고 있다. 가슬갑사유허지를 뒤로하고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옛날 이곳에서 무예를 연마했던 신라화랑들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계곡은 속살을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천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군데군데 이어지는 작은 폭포들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계곡 건너기를 몇 차례 하다 보면 물길은 점점 깊이를 다해가고 문복산 서북릉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30여 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동서남북 탁 트인 정상 풍광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뛰어나다. 동으로는 경주 산내면의 대현 3리(중마을) 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백운산과 고헌산이 손에 잡힐 듯 이어진다. 북쪽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은 도수골 만댕, 옹강산과 대부산(조래봉)과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운문령, 가지산, 운문산, 억산으로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삼계리 마을이 지척에 있다. 또한, 운문댐이 만수가 되면 조망할 수 있어 더욱 뛰어난 풍광을 볼 수도 있다. 문복산 정상에서 운문령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은 그 길이가 5㎞에 이르고, 표고 차도 100m 정도로 산행하기가 좋다. 능선에 올라서면 2시간 거리로 주변 탁 트인 전망과 봄철 흰 철쭉 고목을 만날 수 있고, 관목의 터널 길을 즐길 수 있으며, 겨울철 설경의 부드러운 능선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오갑사와 신라화랑의 군사 훈련장
문복산 서쪽 사면 개살피계곡에는 신라화랑들의 심신 수련장이며 군사훈련장소로 알려지는 가슬갑사(嘉瑟岬寺)가 있었다. 가슬갑사는 원광법사가 신라화랑 귀산과 추앙에게 세속오계를 내려 주었던 장소로 기도 도량이자 화랑의 군사 훈련장이었다. 운문사 사적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28년(567)에 오갑사를 창건할 때, 천인이 찬양하고 용신이 서로 도우니 그 소리가 하늘을 진동했다. 대작갑사(운문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요충지에 자리하여 동-가슬갑사, 서-소작갑사, 남-천문갑사, 북-소보갑사를 만들었는데, 삼국통일의 기틀이 마련되자 폐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가슬갑사는 운문사 동쪽 9,000보 되는 곳으로 표기돼있다. 그러나 가슬갑사 유적비가 자리한 곳은 잡초와 잡목이 무성하고 '가슬갑사유허지'라는 표지석만 서 있는데 정확하지가 않다. 

드린바위와 고헌산에 얽힌 전설
문복산 동북 방향 500m 아래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군을 볼 수 있는데 이 바위를 드린바위라 부른다.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큰 직벽과 오버행(overhang) 바위인 드린바위는 높이가 130m, 둘레가 약 100m에 이른다. 멀리서 바라보면 높은 바위가 위에서 아래로 드리워져 있다 해 '드린바위'라 불리고 있다. 드린바위는 드려지듯 험한 곳이므로 좀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는 석이버섯이 바위틈에 붙어 자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도 석이버섯을 따서 먹기도 했다. 이 드린바위에는 옛날에 지네와 거미들도 살고 있었다. 그 지네는 어찌나 큰지, 거미 또한 서 말지 소대(솥뚜껑)만 했다고 한다. 옛날 어떤 남정네가 석이(石耳)버섯이 몹시 먹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드린바위에 길고 튼튼한 줄을 매어 바위의 아래쪽으로 내려가 석이를 따기 시작했다.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이므로 석이가 많아 버섯을 따는 데만 정신이 팔려 바깥세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었다. 

문복산 정상석
문복산 정상석

 드린바위 멀리 동쪽에는 고헌산이 자리 잡고 있다. 남편이 석이버섯을 따러 가던 날 고헌산 우레들 부근에 살던 아낙이 석이버섯을 따는 남편에게 새참을 가져다주기 위해 흰죽을 쑤어 머리에 이고, 우레들을 지나가다가 맞은편 드린바위를 바라보았다. 그때 석이를 따고 있는 남편이 매달려 있는 줄을 지내가 물어뜯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오금이 저리고 깜짝 놀란 아낙은 그만 다리를 헛디뎌 우레들에 흰죽을 쏟아버렸다. 아낙은 "여 보소! 여 보소!"  버섯 따는 남편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버섯 따는 데만 전념하다 보니 고함이 들릴 리가 만무했다. 다시 목이 터질 듯 큰 소리로 "여보소! 여보소! 거기 아무도 없소! 우리 남편 좀 살려주소!"하며 손나팔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니 겨우 사내는 무슨 말이 들리는 듯 이곳을 바라보며 손으로 응대를 하는 것이었다. 아낙은 손짓·발짓을 하며 지네가 줄을 끊는다! 지네가! 했다. 그제야 그는 말을 알아듣고 위를 쳐다보니 지네가 나와 줄을 물어뜯고 있지 않은가? 이때 어디선가 서 말지 소대(솥뚜껑)만 한 거미가 나타나 지네를 물리치고, 거미줄로 줄을 이어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곳이다. 이후로 경주 산내 사람들은 고헌산을 '고함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날씨가 맑은 날 드린바위 위에서 고헌산을 바라보면 전설처럼 우레들 8부 능선쯤에는 그때의 전설을 뒷받침하듯 아낙(부인)이 놀라 다리를 헛디뎌 넘어지면서 흰죽을 쏟은 밥알 자국이 희미하게 보인다.

진희영 산악인
진희영 산악인

 문복산은 영남알프스 최북단에 자리한 고즈넉한 산이다. 이 산은 여태 영남알프스의 명성에 가려 등산객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 영남알프스 울주 9봉 반열에 올라 주말이면 많은 사람이 찾는 산이 되었다. 민족 통일을 열망하던 신라 원광법사도 이곳에 찾아와 세속오계를 내려 주지 않았던가. 아직도 개살피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나에게 산은 신앙이요, 등산은 운명이다"라는 조루주 파이오의 말처럼 이번 영남알프스 완등과 관련하여 내 마음의 산들을 하나씩 가져 봄이 어떠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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