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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수영장 / 안녕달 지음
수박 수영장 / 안녕달 지음

아침저녁으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런 날 커다랗고 시원한 수박 한 통 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면 참 행복하겠지요. '수박' 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어요. 고향이 반어촌이라 우리 집은 밭농사를 많이 지었어요. 
 참외, 수박, 가지, 오이, 고추 등……. 


 매미 소리가 한창일 때 아홉 살인 저는 친구들이랑 캄캄한 밤에 우리 밭으로 수박 서리를 나가기로 작전을 짰어요.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모이기로 한 마을 정자나무 밑으로 달려갔지요. 또래 남자아이 두 명이랑 여자아이 세 명은 살금살금 언덕배기에 있는 우리 집 수박밭으로 갔어요.
 달빛도 고요한 밤 살금살금 도둑고양이가 되어 두 명이 조를 이루어 수박 한 통씩 무려 세 통을 들고 튀었어요. 마을 허름한 폐가 근처에서 수박을 큰 돌에 내리친 뒤 나누어 먹었어요. 우리 밭이라 괜찮았고 아득한 그 시절에는 가능 일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큰일 날 일이지요.


 열이 많은 체질인 저는 유독 과일 중에서 수박을 좋아합니다.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을 먹으면 더위가 달아나곤 하니까요.
 어느 날 서점에 갔다가 '안녕달'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책을 발견했어요. 프로필을 보니 안녕달이 쓰고 그린 첫 번째 그림책이었어요. 색연필로 그린 그림이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어요. 칸을 나누어 인물의 동작이 연상되도록 연속적인 그림을 그리는 만화 형식의 구성을 활용하여 화면에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 냈어요. 작가의 발랄한 상상력과 재치가 빛나며 가족에 대한 애정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한여름이 되면 '수박 수영장'이 개장을 합니다. 엄청나게 큰 수박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 놀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수박 수영장에서 놀며 더위를 식히고, 마을 너머로 지는 해를 함께 바라보며 내년 여름을 기약하는 정말 놀라운 글이었습니다. 커다란 수박 안에 들어가 수영을 한다는 놀라운 상상력에 탄복하고 말았어요.

김이삭 아동문학가
김이삭 아동문학가

 특히 이 책에는 나이, 성별, 장애 등에 구별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점이 인상적이어요. 수박 수영장을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이에요. 앉을 때는 절로 "읏샤" 하는 소리가 나오지만 새로 개장한 수박 수영장을 보고 설레는 마음은 아이 못지않았어요. 수박 껍질로 만든 미끄럼틀을 타는 할머니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지만, 표정은 생기가 넘쳐요. 수박 수영장은 아이들뿐 아니라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또 가족, 친구, 이웃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입니다. 휠체어를 탄 아이도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여요. 차이를 잊고 모두 함께 놀다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뒷모습에서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다정한 시선이 전해집니다. 


 책에는 뜨거운 햇볕, 서걱거리는 수박 살, 붉고 청량한 수박 물, 아이들의 웃음소리, 시원한 소나기, 붉은 노을, 밤의 반딧불이 등이 그려져 있어 책장을 넘길수록 여름의 정취가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껴져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까지도 여름마다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다시 보니 소장하길 잘했다 싶어요.  아동문학가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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