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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덕왕이 반란을 일으켜 조카 애장왕을 시해하고 반란을 도운 동생이자 태자인 수종(秀宗)에게 왕위를 넘겨 제42대 흥덕왕이 되었다.

 헌덕왕때 부터 통일신라는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헌덕왕 이후 왕들은 국정에 대한 비전도 없이 권력만 탐하며 나라를 이끌 리더쉽도 부족했다. 헌덕왕이 즉위하고 극심한 흉년이 들더니 백성을 구휼할 능력도 없어 농민 반란이 일어나고 굶주림에 지친 민초들은 신라를 버리고 당나라로 도망 갔으나 붙잡혀 타국 노비 신세로 전락하는 일이 생겨났다. 왕위 패권 다툼에 패해 명주(溟州, 강원도 강릉)로 물러나 있던 무열계 김주원 아들 김헌창도 인근 4개주 도독들과 연합해 반란를 일으키며 왕권에 도전하는 일도 일어난다. 

 이 시기 당나라에는 차(茶)가 널리 재배 되었는데 문인 육우(陸羽)가 다서(茶書)에 관한 최초.최고의 서적 '다경(茶經)'을 집필해 차 문화가 크게 활성화 되었다. 828년 신라 흥덕왕 3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김대렴(金大廉)이 차나무 씨앗을 들여와 왕명에 따라 화엄사 아래 장죽전(長竹田)에 심어 우리나라 차나무 시배지(始培地)가 된 지리산 자락에서 널리 퍼져 나갔다. 

 흥덕왕은 부인 장화부인(章和夫人, 정목왕후 定穆王后)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화부인은 오빠 애장왕이 남편 흥덕왕과 시아주버니 헌덕왕의 손에 숨진 비극은 치유할수 없는 마음의 병이 되었다.  남편이 왕좌에 오른 두 달째인 826년 12월 겨울 장화부인은 왕비의 화려한 삶을 뒤로 한 채 죽었다. 
 
 당나라 황제가 슬픔에 빠진 흥덕왕에게 앵무새 한 쌍을 전하자 왕은 새장 앞에서 앵무새를 바라보며 죽은 왕비를 그리던 어느날 암컷이 죽었다. 홀로 남은 수컷이 애처롭게 울기를 그치지 않자, 왕은 사람을 시켜 수컷 앞에 거울을 걸어 두었다. 새가 그 거울을 쪼다가 그림자임을 알고서 슬피 울다가 죽었다. 왕은 수컷이 죽자 시를 한편 지었는데 시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흥덕왕은 신하들의 만류에도 재혼을 하지 않고 시녀 마저 멀리하며 오직 내시의 시중만 받았다. 오래토록 그녀를 그리워하다 왕비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신라 왕릉 중 서라벌과 가장 멀리 조성된 경주 안강읍 흥덕왕릉은 신라에서 유일하게 왕과 왕후가 합장된 릉이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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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강읍 육통길에 자리한 흥덕왕과 왕비의 합장릉의 모습. 2020. 2. 2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안강읍 육통길에 자리한 흥덕왕과 정목왕후의 합장릉 모습. 2020. 2. 2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원성왕릉과 함께 완벽한 왕릉 형태를 가진 경주 안강읍 육통리 흥덕왕릉의 문인.무인상(사진 왼쪽 위.아래) 좌.우 1쌍과 왕릉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4개의 사자상 중 왕릉 앞 사자상 좌우 1쌍의 모습.  2020. 2. 2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원성왕릉과 함께 완벽한 왕릉 형태를 가진 경주 안강읍 육통리 흥덕왕릉의 문인.무인상(사진 왼쪽 위.아래) 좌.우 1쌍과 왕릉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2쌍의 사자상 중 왕릉 앞 사자상(사진 오른쪽 위.아래) 좌.우 1쌍의 모습. 2020. 2. 2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흥릉왕릉 비석의 받침돌인 귀부만이 남아 있는데 귀부의 비편에서 ‘흥덕’이라는 글자가 나왔다. 2020. 2. 2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흥릉왕릉 비석의 받침돌인 귀부만이 남아 있는데 귀부의 비편에서 ‘흥덕(興德)’이라는 글자가 나왔다. 2020. 2. 2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아침을 여는 여명 빛과 연무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 전국 사진애호가들이 찾는 흥덕왕릉 앞 송림의 전경. 2020. 2. 2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아침을 여는 여명 빛과 연무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 화가와 사진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흥덕왕릉 앞 송림의 전경. 2020. 2. 20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전남 구례군 광의면 대전리 미륵골 석불입상의 모습. 불상은 마치 무릎을 꿇고 차를 공양하는 모습인 공양 보살상이다. 전남 구례군 제공
신라 흥덕왕 때 차나무가 처음 심어진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군 광의면 대전리 미륵골 석불입상의 모습. 불상은 마치 무릎을 꿇고 차를 공양하는 모습인 공양 보살상이다. 전남 구례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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