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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화 수필가
윤경화 수필가

일 년 전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던 날 자정의 굉음을 잊을 수 없다. 그 전해에 경주 지진의 공포를 경험한 탓인지 이번에는 아예 집이 두 동강 나는 줄 알고, 서재에 있던 나는 몸이 굳어져 미동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바람만 세차게 불 뿐 집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듯했다.

날이 밝을 무렵 정원에 나가보았더니 북쪽에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직경이 58센티미터나 되는 거목의 밑동이 싹둑 자른 듯이 부러져 있었다. 집이 아니라 느티나무가 넘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열두 해를 함께한 시간을 생각하니 안타깝고 애석한 마음이 컸다. 

나는 느티나무를 심을 때 그늘의 품이 넓고 두꺼워지면 쌍둥이 의자를 마련하고자 하는 염원이 있었다. 그래서 열두 해 전 같은 시기에 자작나무와 함께 심었다. 나의 바람대로 각각의 위치에서 자작나무는 곧게 위로, 느티나무는 사방으로 가지를 잘 발달시키며 해마다 그들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미 성목이 되었지만 백화(白樺)의 몸피가 조금만 더 불어나기를 기다리던 중에 느티나무는 태풍 마이삭에 변고를 당했다. 

시중에 좋은 재질로 만든 세련된 디자인의 의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의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열두 해를 기다리다 그 재료를 마이삭이 가져갔다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다. 사실 나란 사람도 현실과 괴리가 있는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개성이란 말로 나를 살짝 가리면서 몇 마디 변명을 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 세대는 열심히 노력해서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유산이 대동소이하다. 물론 특별한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개 부모세대가 약간의 물질과 근면한 정신을 물려준다고 할 수 있다. 삶이란 것이 어느 세대에게 특별히 너그러움을 베푸는 일은 없다. 해서 우리는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감싸고 있는 귀한 것들을 누릴 기회를 스쳐 지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백석 시인의 '백화白樺'를 잠깐 소개하자면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감로)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 너머는 平安道(평안도) 땅이 뵈인다는 이 山(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팔십여 년이 된 그의 시가 여전히 온전한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자작나무의 특성이 시에 녹아 있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시인은 자신의 눈가를 뜨겁게 적시는 것 중 하나가 '가난한 아버지'라고 생각을 한다지만 정작 그 덕에 풍요한 물질로부터 오롯한 자신의 세계를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백석의 가난'이야말로 그의 세계를 지킨 수호자였을지도 모른다. 모순되게도 궁핍은 일제 강점기의 우리 지식인의 보호 수단이 된 측면도 있다. 

물질의 풍요가 때로는 중요한 것을 묻어버리기도 한다. 가끔 그 속에서 빠져나와 자신과 온전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어설픈 유산을 꿈꾸었던 것이 느티나무 아래 쌍둥이 자작나무 의자다. 이 꿈은 큰 부자가 되는 것보다 나를 설레게 하였다. 나는 아들이 어렸을 적에 키를 재고 몸무게를 달아보듯 산책길에 녀석들을 안아보고 쳐다보며 두 나무가 짝이 되어 후손들의 어느 시간을 어루만져 줄 것을 기대했다.

후손들이 자작나무 의자에 앉아 아침에는 동산의 일출을 맞이하고 한 달 중 며칠 간은 고즈넉한 저녁에 월출을 맞이하며 그들과 함께 흐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감동을 맛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인연과 나란히 앉아 아침과 저녁에 놀이 물들고 흩어지는 현상에서 존재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섭리에 공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이와 같은 연유에서 가족과 함께한 의미가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소박한 유산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그것이 사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이루지 못할 수 있음도 알았다. 태풍 마이삭을 통해 작은 것이지만 인연이 닿아야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부러진 나무의 밑동을 사흘에 걸쳐 해체 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인연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다른 쓸모를 위해 이런 과정을 겪게 되는 것 같기도 해서 가족들의 생각이 흐르는 방향으로 따라가 보았다. 멀리 있는 아들에게도 연락했다. 모두 가족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다용도 책상을 원했다. 느티나무는 책상으로 거듭나기 위해 벌써 일 년 가까이 몸만들기를 하고 있다. 나무의 외피가 헐거울 만큼 건조가 잘 되고 있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느티나무는 책상으로 서재의 중심에서 우리 가족에게 기꺼운 시간을 선물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원하는 바를 위해 긴 시간 계획하고 노력하지만 낯선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자작나무 의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느티나무 책상의 짝으로 여전히 자작나무 의자를 생각하고 있지만 열두 해 동안 준비한 일도 하룻밤에 뒤집는데 이 해가 가기 전에 책상이 되어 집 안으로 드는 느티나무는 백화와 짝을 맺을 수 있을지. 난데없이 물음표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여전히 나는 기대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여행 중에 불청객 같은 물음표의 훈수가 때로는 묘수일 때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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