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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동 이유 
 
이경레  
 
그 겨울 삼문동은 
나란히 걸어가는 친구 같았으므로
 
골목 끝에 다다르면
여러 갈래로 길이 나 있어
아직 남아 있는 게 있다고
길은
말하고 있었으므로
 
몽당연필 같은 겨울 햇살이 
느릿느릿 골목 안을
세세하게 다 비춰 주었으므로

두 손바닥으로 소중한 것을 감싸 쥔 듯 
삼문동을 품고
물길이 흘러가는 것도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낮은 울타리와
울타리도 없는 마당의 적요
자라다 만듯한 마당의 나무와
빈 방들의 칩거는
 
이방인에게 매혹적이었으므로
낯설어서 정다운 삼문동
그해 겨울
 
사연이 없었으므로 
그리움은
아프지 않았다  
 
△이경례: 1962 경남 울산 출생. 2006년 '심상' 신인상. 2009년 '나무의 공양' 영남일보 당선. 시집 '오래된 글자'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삼문동을 지명으로 읽는다. 어디에 있으며 어떤 곳인지 몰라도 좋다. 그냥 따라가다 보면 아련한 슬픔이 배인 것도 같으나 따뜻하다. 체언이나 명사 뒤에서 형용사를 만든 그 말이 삼문동 이유는 별것 아닌 것이 아니게 읽힌다. 그것이 이유라면 이유가 된다. 풍경 안내자를 따라 덴마크 휘게hygge(편안함, 따뜻함, 안락함)나 스웨덴 라곰lagom(충분함, 적절함,  균형이 맞는, 절제된 삶의 아름다움 추구)의 라이프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누구든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사연, 어떤 이유,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슬픔의 본질은 같다. 누군가는 말한다. 하늘에는 측량하기 어려운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불행과 복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슬픔에 충분히 머무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슬픔이 고여 있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감정은 우리가 태어날 때 우주에게 선물 받은 에너지라 했겠다. 때론 눈물도 감정을 먹고 자란다. 아니, 어쩌면 세상이 우리에게 지속적인 결핍을 입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우고 지워도 다시 차오르는 '결핍'이야 말로 진정한 에너지원이 아닐까. 내일 몫까지 쌓아두기 힘든 게 행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그리움은 슬픔과 아픔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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