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8대 아달라 이사금의 후손으로 박씨 왕조를 되찾은 신덕왕(神德王)의 태자 승영(昇英)이 왕위에 올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이 되었다.
패망의 길로 접어든 신라 말기 왕위에 올라 8년간 재위했다. 왕건이 폭정을 일삼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高麗)를 세웠다. 그러나 지방 호족들이 고려에 등을 돌리자 왕건은 그들을 회유하기 위한 유화책을 편다. 특히 상주에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아들 견훤과 관계가 틀어지자 왕건에게 투항했다. 신라에 대한 야심이 가득찬 후백제 견훤은 대야성을 점령하고 신라로 진격하자 경명왕은 고려에 원병을 요청해 겨우 후백제를 막아냈다. 경명왕이 고려와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자 신라 호족들과 장수들이 잇달아 고려에 귀순하거나 투항하게 된다.
국운이 다한 나라 도처에 괴담이 퍼진다. 문무왕때 당나라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지은 사천왕사(四天王寺) 벽화 속 개가 며칠을 짖어 댄다. 진흥왕때 궁터 예정지에 지은 호국사찰 황룡사에선 탑 그림자가 한 관료의 집 뜰에 열흘이나 머물렀다. 천황사에 흙으로 빛은 오방신의 활줄이 끊어지고 벽화의 개가 그림에서 튀어 나와 뜰을 뛰어 다녔다. 신라에 망조(亡朝)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쓰러져 가는 나라를 지키려 했던 경명왕은 젊은 나이에 숨져 경주 황복사(黃福寺) 북쪽에 묻히고 동생 박위응이 55대 경애왕(景哀王)으로 형의 왕위를 계승했다. 경주 배동 삼릉(三陵) 가운데 하나가 경명왕의 왕릉이라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밀양 박씨 세보(世譜)에 따르면 경명왕의 여덟 아들들이 박씨 근간이 되었다고 한다. 장남인 밀성대군 박언침은 밀양 박씨, 차남인 박언성은 고령 박씨, 삼남은 함양 박씨, 그 다음 사남부터 팔남까지 죽산, 무안, 춘천, 순천, 충주, 상주, 월성 박씨들의 시조가 되었으니 현재 박씨를 한국 3대 성(姓)에 있게 한 장본인이 바로 경명왕이다. 이 중 울산 박씨와 경주 박씨는 경애왕계에서 갈라져 나온 박씨이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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