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정순 수필가
배정순 수필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잠시 망설였다. 우등 고속버스와 일반 고속버스 차이는 만원이었다. 구태여 걸리는 시간이 같은데 우등 고속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일반 고속을 탔다. 삶이 고단해 쉬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전업주부다 보니 잠에 취해 시체 놀이로 시간을 버릴 만큼 일상이 피곤한 것도 아니다. 시집에 일하러 가는 데도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여행이다. 

평일 일반 고속은 한 사람이 두 자리를 차지하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다. 오늘은 형편이 달랐다. 옆자리에 내 또래의 우아한 차림의 여자 손님이 앉아있다. 외관상 일반 고속을 탈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나 케이티엑스를 탈 사람은 머리에 금테 두른 건 아니지만,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 고고한 분과 한자리에 앉아 서울까지 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근거렸다. 다른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평일인데도 빈자리가 없다. 짐 정리를 끝내고 마지못해 여사님 옆자리에 조신하게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여사님의 푸념이 낭자하다. 일반 고속 타게 된 변을 호소한다. 비행기, 케이티엑스도 자리가 없어 고속버스를 탔더니 비좁아 죽겠다는 것이다. '누가 물어봤어?' 하는 마음으로 못 들은 척 앉아있었다. 케이티엑스나 비행기도 빠른 것 빼고는 자리가 그리 넉넉하진 않던데 아예 딴 세상 사람처럼 거드름을 피운다. 

관심 없는 척 눈은 책에 박고 있었다. "서울까지 몇 시간 걸리느냐"라고 묻는데도 생선 훔쳐 먹은 고양이처럼 못 들은 척했다. "내 말이 안 들려요?" 하는 날이 선 쇳소리가 귓전에 날아들었다. 그때야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하며 음흉스레 반문했다. 기실 나도 책에 눈을 박고 있었지만, 고귀한 여사님 신경 쓰느라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 여사님이 잘난 체하겠다는데 좀 받아주면 어떤가. 그걸 못 봐주고 심술부리고 있는 내 용심도 보통은 넘는다. 

이 고약한 심보는 나의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나도 모르는 나의 단면이다. 마지못해 그녀에게 빠르면 4시간 반이요, 늦으면 5시간 걸린다는 건조한 한마디만 던지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고고한 여사님께서는 오늘 완전히 스타일 팍 구긴 날이라 여겼으리라. 일반 고속을 탄 것도 자존심에 먹칠한 사건인데 옆자리의 까칠한 여편네까지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으니 앉은자리가 가시방석 아니었겠는가.

오늘따라 버스는 왜 그리 더딘지. 느린 굼벵이 기어가듯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이대로 가다는 족히 대여섯 시간 걸릴 것 같다. 전에 없던 기현상이다. 병목현상은 내일부터 연휴라서 휴가객이 몰린 때문이라 하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나는 안쪽에 앉아 여유라도 있지 창 쪽에 앉은 여사님은 미칠 지경인 모양이다. 좁은 공간에서 여사님 체면 구기게 신발을 벗고 앞자리 등받이에 발을 올리는가 하면 비좁은 공간에서 아예 두 발을 의자에 올려 살쾡이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는 꼴이라니, 혼자 보기 아깝다. 나는 여전히 여유로운 척 책을 읽거나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잠시 용변을 보고 자리에 앉았다. 무슨 수를 내야 했다. 남의 고통을 즐기는 것도 한계가 있지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처음 만난 것처럼 표정을 밝게 목소리는 상냥하게, "무슨 용무로 서울에 가시느냐?" 물었다. 관심을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 자신은 서울이 집이고 친정이 울산인데 엄마가 요양병원에 계셔서 문병 왔다 가는 길이라 했다. 통성명하고 나니 서걱대던 분위기가 사뭇 부드러워졌다. 

시어머님 병간호하러 올라가는 나와 친정어머니 문병하고 돌아가는 그녀, 같은 이유로 버스의 승객이 되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좀 그랬다. 서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아닌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세대로서 같은 짐을 지고 있다는 동류의식이 들어 의외로 대화의 통로가 쉽게 열렸다.

겉모습은 달라도 가정사는 거기서 거기다. 피차 어머니를 돌보는 일부터 노후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소를 주고받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편한 이웃집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진즉 이랬더라면 피차 지루하지 않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을 텐데 허세 부리느라 아까운 시간 낭비했다. 

그녀가 "책 읽기를 좋아하시네요?" 했다.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어 "서울을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심심해서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노라" 궁색한 변명을 했다. 어찌 당신을 상대하기 싫어 책을 보는 척했노라 토설할 수 있겠는가. 

친정이 울산이면 수도 없이 고속버스를 타 보았을 텐데 처음 타보는 것처럼 행동한 그녀도  그렇지만 그 정도의 트릭도 못 받아준 나의 치졸함도 그녀 못지않았다.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만난 사람처럼 한 꺼풀 벗고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가시방석 같던 자리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대로 끝마무리는 괜찮았다. 이게 어디 버스 안에서 만의 일일까.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