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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옥순 호계중 교사
구옥순 호계중 교사

보름 전 약 3년 전 제자에게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었다. 이제 고3인 제자는 몇 달 전에도 전화를 해서 본인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심정을 한 시간 가량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의 담임 교사도 아니었고 중학교 1학년 시절 일주일에 한 번 창체 시간에 만난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이 중3이었을 때 독서토론 동아리를 함께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나에게도 흐뭇한 추억이 있는 제자들 중의 한 명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선생님' 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적잖이 당황한 나는 잠시 지인들과의 만남을 벗어나 전화기 너머 전해오는 그 아이를 마음을 읽으려 하였다. 그리고 얼떨결에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 딸 아이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만남을 약속해 버렸었다. 중학교 시절, 누구보다 혹독한 사춘기를 경험한 딸 아이는 이제 대학생이 되어 누구보다 말이 잘 통하는 벗으로 성장하였다. 

 학교 거부증과 부모와의 갈등, 학업 포기 등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딸은 이제 가끔 학생들에게 멘토가 되어 주는 일을 하곤 하는 딸을 지켜 보면서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한 차례 약속을 미루고 만난 아이는 중학교 때와 또 잠시 보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오랫동안 공부하는 아이다운 몸매가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찌들어 보였고 피부 트러블까지 있었다. 딸 아이와 잠시 인사를 나누고 딸 아이는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가고 싶은 학과가 있는데 성적이 점점 떨어져서 너무 힘들다며 중간 중간 눈물을 보이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이 학생의 문제는 우리 대부분의 고3이 겪는 문제이자 아픔이기도 한 것이다.
 어른이자 교사이고 또 한 가정의 부모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학생이 하는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맛있는 것을 사 주는 것 외에 어떤 방법이 있단 말인가? 부모님에게 힘듦을 말하지 그랬니? 라는 질문에 말씀드렸는데 돌아온 대답은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다 힘들어"라는 말씀이었다고. 

 고 2때는 시험을 2주 앞두고 간이 나빠져서 입원했는데 시험공부 때문에 입원 날짜를 다 채우지 못하고 퇴원해서 공부해야 했다고 하면 또 한 번 눈물을 글썽이는 제자를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새삼 마음을 아리게 했다. 이런 아이에게 교사는 어떻게 위로해 주는 것이 좋을까? 부모는 또 어떻게 해 주는 것이 좋을까? 

 교사이자 또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한 나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지은(가명)아, 넌 참 소중한 아이야. 네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성적이 올라가든 내려가든 너의 인생에서 지금이라는 이 시간은 참 중요한 시간이지만 또 흘러가는 시간이기도 해. 니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그 길을 간다고 생각하고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 묵묵히 견디지만 말고 주위 어른들,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구체적으로 너의 상황과 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슬럼프를 잘 이겨내서 훗날 너처럼 힘들어하는 또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카페에서 나와 만두며 떡볶이까지 먹고 돌아가는 제자의 얼굴이 처음보다 밝아진 것을 보며 나 또한 처음 만났을 때보다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치열하게 사춘기를 겪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말을 전하는 자녀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나의 일상 속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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