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수호 동맹를 맺은 신라 경애왕을 제압하고 공산성전투에서 고려에 맞서 크게 이긴 후백제 견훤은 승리에 도취해 고려의 평양 땅을 밟겠다는 도발적인 편지를 고려 왕건에게 보냈다. 이에 질세라 왕건도 답장을 보내 자신의 넓은 도량을 내보이며 견훤을 사마귀와 모기에 빗대며 그의 비뚤어진 도덕성도 꾸짖는다.
후백제 국서(國書)인 편지는 견훤의 책사, 파진찬(波珍飡) 최승우(崔承祐)가 썼다. 당나라 유학파인 최승우는 통일신라 말기 최치원, 최원위과 더불어 최씨 성을 가진 3명의 천재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왕건의 편지도 역시 당나라 유학파 문장가로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친 고운 최치원(崔致遠)이 썼다.
장창호 작가는 '견훤의 야심 2편'에서 견훤과 왕건이 주고 받은 편지 내용을 소개하며 후삼국시대 맞수였던 견훤과 왕건이 칼과 창이 아닌 붓과 먹으로 펼친 한치의 양보도 없는 또다른 열전을 실감나게 연기하고 있다.
<견훤>
"아우 보께 신라의 제상 김웅렴(金雄廉) 등이 장차 아우를 월성으로 불러 들이려고 한 것을 알고 있네.
그건 큰 자라의 소리에 작은 자라가 소리 내는 꼴이며 종달새가 매의 날개를 찣어려고 하는 짓이니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종묘 사직은 빈터가 될거야.
내 먼저 조적(祖逖)의 채찍을 잡고 한금호(韓擒虎)에 도끼를 휘둘러 무뢰한을 타이르며 설득했는데 뜻밖에 간신들이 도망가고 경애왕은 운이 없어 눈 감으셨지.
경명왕의 외종제이며 헌강왕의 외손 김부(경순왕)를 받들어 신라 왕에 모시니 위태로운 나라 바로 세우고 없는 왕 다시 않힌 과인의 공덕.
아우는 그 마음 헤아리지 않고 이리 저리 떠다니는 말을 믿고 온갖 꾀로 왕 자리 넘겨 보고 갖은 방도로 이 땅을 짓밟으니 이 무슨 수작인가 아우는 내 말머리도 보지 못했고 내 쇠털 하나 뽑지 못해서.
초겨울 성산(星山, 경북 성주)지 나래 쌓아 신하인 색상(索湘, 고려 장수)이 그 손을 묶였고 이 달 들어 미리사(美利寺) 앞에선 아우의 좌상 김락(金樂)이 해골을 드러 냈지 이 밖에 죽인 것도 많고 쫓아가서 사로 잡은 것도 적지 않아.
강하고 약함이 이와 같은데 누가 이기고 질지는 다 알리라 내가 바라는 것은 평양의 누각에 내 활을 걸고, 패강(浿江, 대동강) 물을 내 말에게 먹이는 것이오. ..."
<왕건>
"처음엔 당신이 적을 가벼이 여겨 사마귀(螳蜋, 버마재비)가 수레바퀴를 막는 꼴로 달려드니 그게 가당치 않음 알고 내가 물러서서 모기(蚊)가 산을 짊어진 모습 이었으니까.
공손히 사과하면서 하늘에 맹세했지 그날 이후 길이 화친하겠다고 하여 서로 죽이지 않는 병가의 뜻 받들어 포위망을 풀어 군사를 쉬게 하였소. 볼모를 잡고서도 마음 편하게 대해서니.
내가 백제 사람에게 득을 베푼거요.
맹세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형의 포악한 힘이 발작할지 누가 알았겠소 땅벌과 전갈의 도구로 백성을 헤치고 이리와 호랑이 같이 덤벼 금성을 궁지에 몰고 신라의 궁궐을 뭉개줄 생각이나 했겠소.
주나라를 떠받든 진의 환공이나 문공 처럼 형님 그 패륜에 맞설 사람이 어디 있겠소 기회를 틈타 반역을 도모하던 한나라의 왕망(王莽)과 동탁(董卓) 처럼 간악한 자들만 남았소. ..."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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