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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끊다
 
유정탁
 
끼니 때 맞춰 점심을 먹는다
찬이라고는 엊저녁 먹던 된장찌개와 겨울초가 전부다
 
찬밥에 된장 한 술 떠먹는데 전화가 왔다
 
뭐하오?
 
동시 쓰는 시민이 형이다
 
밥 먹소
얼마나 먹었소?
반도 못 먹었소
그만 끊고 거기로 나오소
 
전화 끊고 
먹던 밥도 끊고
또 밥 먹으러 간다

△유정탁: 1968년 경남 거창 출생. 1998년 제8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2005년 CJ 문학상 수상 울산 아동문학회 회원. 현재 울주 옹기종기 도서관 시창작 강사. 시집 '늙은 사과' '버드나무 여인.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짧은 시 속에 묵직하게 툭 안겨오는 이 정겨움, 선약도 없는 식사를 말 몇 마디로 성사가 되는 시인과 시민이 형, 무엇을 먹었던 그 밥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였을 것이다. 밥을 먹다 일방적인 부름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달려갈 수 있고 밥 때가 되어 무작정 부를 수 없는 사이. 시민이 형과 시인의 정은 거칠한 초벌구이 그릇 같은 표현이지만 그 안은 깊은 정겨움으로 차 있다. 둘에겐 숟가락 달그락 소리처럼 다정한 말이 오고가지 않아도 늘 서로의 마음을 열어 보아 주는 깊은 세월을 공유하며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따뜻한 온기 가득한 밥그릇처럼 힘이 되어주는. 
 
 혼자 먹는 찬이 없는 초라한 점심상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외로움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엊저녁 먹던 된장찌개와 겨울초'로 더욱 쓸쓸한 한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가 '뭐하오?' 짧은 대화체가 시의 분위기를 바꾸는 깜찍한 시의 맛을 보여준다. 물음하나가 행 나눔으로 인해 '찬밥'이 주는 의미는 어디로 사라지고 그 뒤가 궁금해지는 것은 어쩜 시인의 의도된 계산은 아닐런지,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의 간결함 속에 묻어있는 은근한 정으로 인해 시는 제 역할을 다한 것처럼 시인과 시민이 형의 정다운 시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전화 끊고/ 먹던 밥도 끊고' 한달음에 달려가는 길에 나무랑 도시 풍경들 줄줄 따라갔을 것이다. 밥이란 그렇게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시인은 찬밥 같은 자신의 안에 것을 허물 수 있는 가장 적기의 '거기로 나오소'에서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다정하였을지도. 그래서 조금 전 혼자 식사까지 위안이 되어 아이스크림 같이 스르르 녹아내렸을지도. '먹소/ 먹었소/ 나오소/ 끊고/ 끊고' 반복은 시의 긴장감과 리듬감, 친밀감과 유대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이 시가 끝까지 놓지 않는 정겨움이 그래서 더욱 빛나기도 한다. 또한 시인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에 대한 호응인 '또 밥 먹으러 간다'.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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