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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헌산에서 바라본 울산방면. 운무 속에 문수산과 남암산이 보인다.
고헌산에서 바라본 울산방면. 운무 속에 문수산과 남암산이 보인다.

예로부터 고헌산은 언양현의 진산(鎭山)으로 불렸다. 동국여지승람 언양현 산천조(山川條)에 '고헌산은 고을 북쪽 10리에 있는데 진산이다(高窟山在縣北十里鎭山)'라고 했다. '고함산' 또는 '고디기'란 별칭도 있으며, 소가 드러누운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와우산'이라고도 부르고 경주 산내 사람들은 고함산이라 부른다. 산의 동쪽 사면(980m)에는 가뭄에 기우제를 지냈다는 용샘이 있다. 용샘은 가뭄이 들면 언양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구량천으로 흘러 태화강(太和江)에 이르며, 북쪽 기슭에 솟은 샘은 밀양강(密陽江)의 상류인 동창천(東倉川)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서쪽 사면에는 산칼치가 산다는 신비의 험지(險地) 우레들이 있어 
문복산(1,014m)의 전설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또한 울산광역시와 경상북도 경주시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낙동정맥의 한 구간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고헌산에 오르는 대표적 등산로는 2곳으로 알려져 있다. 

진희영 산악인
진희영 산악인

고헌산을 가장 가깝게 오르는 와항재
와항재는 상북면 덕현리에서 소호리로 넘어가는 약 540m 높이의 고개로, 대중교통편이 불편해 종주 산행을 이어가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찾는 곳이 드문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자가용 이용이 급증함과 울산시 울주군에서 주최한 '영남알프스 9봉 완등' 인증 이벤트에 참여하는 등산동호인이 늘어나면서 외항재는 단거리 산행을 선호하는 이에게 고헌산의 새로운 들머리가 되었다. 그러나 승용차로 와항재에 정상에서 갔다 온다면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단점이 있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한적한 길을 10여분간 오르다 보면 차츰 등로는 비탈길로 접어든다. 한 시간가량 가파른 비탈길과 너덜길을 번갈아 오른다. 조금 뒤 고헌산이 눈앞에 보이고, 뒤를 잠시 돌아보면 학대산과 문복산이 한눈에 들어오면 문복산 정상부의 드린바위 일대도 쉽게 조망된다. 또한 문복산에서 서담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한일자(一)로 길게 이어지고, 발아래로는 조금 전 올랐던 와항재 능선 맞은편 불송골봉(727m)의 짧은 단맥과 그 너머로 문복산과 산내면 대현리마을과 오른쪽으로 백운산도 조망된다.
 
 서봉은 고헌산 보다 1m 더 높다. 돌탑지대를 지나 고헌산 서봉(1,035m)에 도착한다. (서봉을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고헌산 주봉으로 갈 수도 있다) 등산을 시작한 뒤 약 1시간 30분 가량 걸린 셈이다. 이곳 서봉의 높이는 1,035m로 형격인 고헌산보다 1m가량 더 높은 셈이다. 하지만 산정에는 방화선을 만든다고 산길을 다져 부서진 바위 조각 말고는 이렇다 할 아무것도 없다. 애써 올라온 조망은 서봉 앞 암릉이 천혜의 조망처이다. 발아래에는 고헌산 정상과 서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대통골과 곰지골을 이루고 그 사이로 신기리와 궁근정리의 풍경이 이어지고 영남알프스의 다른 준령인 신불산과 간월산, 그 앞으로 배내봉과 가메봉, 밝얼산, 오두산, 송곳산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건너편에 있는 문복산과 도수골만디(서담골봉), 대부산(조래봉)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그리고 아래쪽 맞은편 우뚝 솟은 봉우리가 불송골봉이고, 우측 뒤편으로는 건천, OK목장과 방주교회, 단석산까지 확인할 수 있다. 24번 국도가 지나가는 가지산 터널로 향하는 곡선길과 덕현천이 길게 이어진다.

고헌산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주봉.
고헌산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주봉.

고헌산의 주 들머리 '신기마을'
언양에서 석남사행 버스를 타고 북으로 약 20여 분 가다 보면 상북면 궁근정리가 되는데 그곳이 바로 고헌산 산행의 주 들머리이다. 신기마을에서 고헌산을 바라보면 마치 장벽처럼 솟구친 산이 동서로 이어져 보이는데, 가운데 봉우리가 정상이며 왼쪽은 서봉(1,035m), 오른쪽이 동봉(1,034m)이다. 신기마을은 고헌산의 주 들머리로 서봉, 고헌산 정상, 동봉 등으로 오르는 산길이 다양하게 열려 있어 한결 재미있는 산행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또한 고헌산의 주 계곡이라 불리는 대통골과 곰지골이 깊게 파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궁근정 새터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도로 북쪽으로 고헌사 2㎞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마을 안쪽으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15분쯤 진행하면 진우훼밀리 아파트와 보성빌라를 지나 마을을 벗어나 10여 분 뒤 고헌산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걷다 보면 조그마한 다리(강산교)가 보인다.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좌측은 대통골, 우측은 고헌사가 있는 곰지골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강산교 기점 4곳으로 나뉘는 등산로
첫 번째  대통골을 따라 오르다 왼쪽으로 꺾어서 오르는 코스로 능선 조망이 뛰어나 봄, 겨울 산행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헌산 서봉으로 오르는 곳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두 번째  강산교에서 왼쪽 계곡(대통골)을 곧장 치고 오르는 곳으로 고헌산의 주 계곡이라 불리는 곳으로 특히 여름철 계곡 트레킹 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대통골의 명칭은 계곡의 형태가 마치 대나무의 통속을 걸어가는 느낌이 드는 곳이라 이름이 붙어졌다. 계곡을 따라 아슬아슬한 등산로는 해발 980m 지점까지 이어지다가 주봉과 서봉의 중간지점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세 번째  강산교에서 12시 방향으로 곧장 치고 오르는 곳이다. 능선에는 명당으로 보이는 묘들이 가끔 나타나기도 하며, 정상까지는 우회 길도 없이 거의 일직선으로 올라야 하는 곳으로 많은 인내와 고도차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이따금 조망이 트인 곳에선 신불산과 간월산 그리고 북쪽의 가지산이 운해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전망하면서 1시간 30여분 오르면 바로 정상에 닿는다.
 네 번째  강산교에서 고헌사가 있는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고헌사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계곡을 건너면 곰지골 옆 계곡처럼 보이는 너들지대를 치고 올라야 하는 곳으로 초보자는 힘든 코스이다. 고헌사에서 1시간 정도 오르다 보면 방화선이 있는 돌무덤이 흘러내리는 상단부인 8부 능선에 올라서는데 오른쪽 능선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이곳에서 진행 방향 왼쪽으로 가르마 같이 갈라진 방화로 산길을 따라 20여 분 오르면 고헌산 동봉에 올라서게 된다. 곰지골은 옛날에 이 골짜기에서 곰이 자주 나타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봉에서 고헌산 정상까지는 5분여 거리에 있다)

고헌산 정상에서의 경관
고헌산 정상에 오르면 이제껏 오르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헌산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동쪽으로는 홈도골, 연구골, 차리 저수지를 품고 있고, 서쪽으로는 낙동정맥이 흘러가는 와항재, 토끼 꼬리 골, 남쪽으로는 대통골과 곰지골, 북쪽으로는 큰골과 도장골을 품고 있다. 정상에는 새로 만든 정상석과 1개의 케른(cairn)이 있고, 동쪽으로는 20여 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억새밭은 가을을 재촉하는 모습으로 산객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영남알프스의 주봉인 가지산과 운문산이 그 자태를 드러내고 서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더없이 아름답고 호젓해 보인다. 또한, 운문령에서 이어지는 상운산과 가지산 풍경이 걸출해 보이고 신불산과 간월산 그 너머 영축지맥의 시살등과 오룡산, 염수봉도 조망할 수 있고 낙동지맥이 이어져 오는 단석산과 토함산까지 관측이 된다. 

고헌산 우레들.
고헌산 우레들.

신비로운 전설 '우레들과 용샘'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삽재마을에서 광바위를 옆으로 휘어 돌아 경주시 산내면으로 넘어가는 와항재(瓦項岾)에 오르면 바로 앞산(고헌산) 중턱에 있는 돌들긍이 눈앞에 다가온다. 학교 운동장만 한 큰 돌들긍 가운데 능선을 두고 동서로 나누어져 있는데 서쪽의 것이 더 넓다. 이 돌들긍 밑으로는 사철 물이 흐르는데 여름철 우기에는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우르릉 쿵쿵'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우레소리와 같다 하여 예로부터 (우레들)이라 불렀다. 이곳은 산세가 아주 가파르고 험하며 여느 돌들긍보다는 특이하게 돌들이 얼기설기 어지러이 쌓여 있어 한 발짝만 내디뎌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므로 산짐승마저도 피해간다는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사지이다. 지금은 주변의 수목들이 점점 번성하여 그 면적도 줄어들고 있지만, 전설에 의하면 이 우레들 가운데는 큰 돌샘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산칼치가 살고 있다고 한다. 어른 서너 발쯤 되는 긴 산칼치는 원래 바다에서 사는 것인데 가끔 육지에 올라올 때는 시퍼런 빛을 내며 이곳에 들어와 서식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등 반복적인 일이 있었다고 했다. 산칼치가 이곳에 들어올 때는 그 피해로 그해 농사는 잘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무하러간 머슴이나 소먹이러 간 아이들, 봄철나물캐는 아낙들이 이곳을 잘 모르고 근접하면 멀리서 마을 노인들이 근처에 얼씬도 못 하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반면 고헌산의 서쪽 사면에는 우레들이 있는가 하면 동쪽 사면(980m 지점)에는 용샘이 있다. 언양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고헌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하는데 산정에 있는 용샘에 가서 비를 다스리는 용신(龍神)에게 정성껏 빌었다. 만약 치성이 부족하면 범이나 실뱀을 만나고, 정성을 들이면 3일 이내에 비를 만난다. 용샘은 가지산의 쌀바위와 함께 태화강의 상징적 발원지이기도 하다. 
 정상에서의 하산하는 길은 여러 곳으로 열려 있다. 가지고 온 차만 없다면 아래로 나 있는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1시간 30여 분이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길에 도착하게 된다. 

 꾸불꾸불 능선은 나를 부르고 
 나는 산에 사는 산사나이다
 모두 떠나자 산으로 가자
 산에 있는 고헌산 산악대원아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고헌산 정상석 옆에 세워져 있던 고헌가를 힘차게 불러보며 남쪽의 산전리로 향한 종주길을 택한다. 
진희영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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