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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한복 입은 남자'

한복 입은 남자는 자꾸만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눈짓을 외면할 수 없었다. 분명 처음 가는 길인데 걸어본 듯하고 낯선 장면인데도 본 듯한 장면일 때가 있다. 한복 입은 남자가 그랬다. 분명 낯선 사람인데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한복 입은 남자와 눈을 맞췄다. 
 '나는 400년 전 왜국에 포로로 잡혔다가 남만에 노예로 팔려갔답니다. 내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작가의 말 중에서)
 
 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전학 온 태리는 정우와 짝이 됩니다. 태리의 증조할아버지는 이민 1세대로 사탕수수밭에서 일하셨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미국에서 돌아가셨지만, 태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태리가 전학 왔을 때 아이들은 미국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관심을 가졌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한국말이 서툰 태리를 귀찮아합니다.
 엉뚱한 태리는 정우에게 남자 초상화를 선물로 건넵니다. 그림 속에는 탕건 쓴 남자가 헐렁한 철릭 소매 속에 팔짱을 낀 채 서 있습니다. 검은 연필로 그린 그림 속 남자는 오른쪽으로 약간 돌아서서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본 정우와 친구들은 호기심을 품게 되고,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러 시간여행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정우 혼자 조선 시대로 가게 되고, 정우는 임진왜란에 휘말려 포로가 됩니다. 왜병은 포로가 된 조선 사람을 노예로 팔려 하고, 정우는 초상화 속 남자를 찾기 위해 노예선에 올라탑니다. 
 

아동문학가 엄성미
아동문학가 엄성미

 17세기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 화가 루벤스가 그린 '한복 입은 남자'는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조선인으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1983년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32만4,000파운드 한화 6억 6,000만 원 정도의 가격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이 금액은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를 갱신한 금액으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루벤스는 그림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고 하며, 이 작품 속 인물은 조선 사람인지 명나라 사람인지 논란이 많습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박혜자 작가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노예로 팔려 간 조선인의 애환을 담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역사적 기록에는 1573년 안토니오 코레아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혔다가 로마까지 가게 된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조선의 민초들이 노예로 살다 죽어간 것입니다.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백성이 고난을 겪습니다. 오늘날에도 시리아 난민 아이가 파도에 떠밀려 다니고, 아프카니스탄 여성들이 총 앞에 서 있습니다.
 한국은 국력을 키워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아동문학가 엄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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