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인숙 남구 기획예산과장 

우리는 생활 속에서 매뉴얼이라는 책자를 쉽게 접한다. 자동차나 휴대폰을 살 때도 매뉴얼 책자가 따라온다. 
 
국방과학기술 용어사전에는 매뉴얼을 '어떤 업무가 수행되는 방법, 사용되는 자재 및 기기, 작업순서 등을 기술한 서류'로 정의하고 있다. 난처한 상황이나 사건·사고때 매뉴얼을 지켰는지에 따라 책임의 무게감이 달라지기도 한다. 
 
울산 남구청에도 업무매뉴얼 108개가 있다. 업무 매뉴얼은 담당자가 바뀌거나, 행정 여건·환경이 변할 때 필수적으로 인수·인계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관리한다. 또 새로운 업무를 시작할 때도 체계적인 관리업무 매뉴얼을 만든다.
 
정책 집행 최일선에 있는 남구청은 현장 업무가 매우 중요하다. 
 
정책 책임자인 서동욱 구청장이 늘 “현장을 제대로 알아야 주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만큼 남구도 업무 매뉴얼 작성이나 검증·평가시에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를 제1 기준으로 따진다.
 
매뉴얼의 중요성은 지난 2016년 태풍 '차바'가 울산에 큰 피해를 입혔을 때 남구의 배수펌프장 관리 사례에서 잘 볼 수 있다. 
 
남구에는 울산시 배수펌프장 24곳 중 11곳이 있는데 태풍에도 불구하고 남구 배수펌프장은 모두 제 기능을 했기에 배수장 펌프로 인한 피해는 없었다. 그때 관리 담당자가 매뉴얼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물난리가 났을 게 자명하다. 현장 속에 살아 있는 매뉴얼이란 바로 그런 경험 등을 바탕으로 만들고 점검하는 것이다.
 
남구청은 전체 직원 중 50%가 40세 이하이고, 57.8%가 여성공무원이다. 직렬에 따라 성별 구분 없이 현장업무에 배치된다. 이러한 조직 특성도 매뉴얼이 강조되는 이유 중 하나다. 현장 경험이 적더라도 잘 갖춰진 매뉴얼이 있다면 행정 품질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물론 매뉴얼의 중요성만큼이나 업무 현장과 개별 상황도 중요하다. 
 
남구가 이달부터 6급 이하 직원들에게 지역의 산업 시설, 문화·역사 유적 등을 돌아보고 공부하는 '남구 바로알기' 현장 교육을 하고 있는 것도 탁상행정에서 벗어나 현장을 보다 잘 이해해서 더 효율적인 매뉴얼을 만들고 실행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설문조사 등에서 어떤 업종에 종사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사무직이라고 답하곤 하지만 내 직종이 서비스업이라는 생각도 한다. 주민에게 최상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마음,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한결같은 행정의 '맛'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늘 갖고 있어서다.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글로벌 기업이 세계 어디서든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매뉴얼이라는 표준이 있기 때문이다. 매뉴얼은 귀찮은 또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애매하고 복잡한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는 손쉬운 길라잡이다.
 
카피라이터 정철은 '사람사전'에서 '기본'을 “세상 모든 기술과 기법, 기교를 이기는 것, 한두 번 질 수는 있지만 결국은 이기는 것, 기술과 기법과 기교는 '좋다'라는 단어를 만나야 힘을 쓰지만 기본은 '있다'라는 단어로 충분"이라고 정의했다. 
 
카피라이터다운 신선한 은유다. 어떤 업무의 기본을 집대성한 것이 업무 매뉴얼이다. 매뉴얼대로 하면 정확하고 빠르다.
 
큰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으레 '기본이 무너졌다' '현장과 따로 노는 업무매뉴얼'이라는 질타가 따라온다. 대한민국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올바른 매뉴얼이 선진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행정의 원천이고 힘이다. 선진 남구 행정이 가려는 길 또한 108개의 업무매뉴얼을 통해 다다를 수 있다. 
 
인생에 지름길은 없어도 바른길은 있다는 말처럼 행정도 똑똑한 표준이 되는 바른길, 현장을 움직이는 생생한 업무매뉴얼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인간관계도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돈독해지듯 행정도 위기상황에 대비해서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는가에 따라 시민이 안심하고, 행정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