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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 울산문인협회장
권영해 울산문인협회장

하나의 눈에는 하나의 관점(觀點)이 있고 수천수만의 눈에는 그 눈마다 각각의 안목(眼目)이 존재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맨 처음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각을 통해서이다. 신생아는 눈에 비친 현상을 통해 직접 경험을 축적하기 시작하는데,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각 의존도가 70% 이상 차지한다고 한다. '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라는 말을 보더라도 '눈'이 신체기관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단안(單眼)으로 된 사진기는 평면적으로만 포착할 수 있지만 사람의 눈은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서 깊고 얕은 것은 물론 높고 낮은 것, 멀고 가까움을 광범위하게 인지할 수 있다. 그래서 '보다'라는 뜻을 지닌 한자도 꽤 많은 것이 아닌가 한다.

시視 견見 관觀 찰察 규窺 간看 감瞰 람覽 열閱 안眼 시示 조眺….

시조시인 이호우(1912~1970)는 그의 작품 '개화'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여기서 '눈을 감는' 것은 단순히 눈꺼풀을 닫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의 눈을 여는 개안(開眼)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꽃이 피는 과정을 관찰(觀察)하던 시인은 생명 탄생의 경이로운 순간에 경외감과 황홀감에 젖어 관조(觀照)하는 자세가 된다. '관조'란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카메라의 싱글 렌즈는 사실(fact)을 보는 과학적, 기계적인 눈이다. 그러나 작가의 눈은 그 사실이 함유하고 있는 진실(truth)을 포착해 내는 통찰(洞察)의 눈이다.

시각적 행위의 성취는 '세상을 보는 창'인 눈(眼)과 눈(目)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은 '매의 눈'에 비하면 시력이 보잘것없지만 시각을 통해서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發見)하게 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의견(意見)이 만들어지고, 자신만의 식견과 견해가 생기며 그로 인해 안목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눈이 두 개인 것은 아마도 세상의 부정적인 면만 보지 말고 밝음과 어두움, 가능과 불가능, 비관과 낙관의 두 가지 현상을 균형 있는 감각으로 바라보라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늘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 어제만을 바라보던 눈으로 내일을 설계할 수는 없다. 일상의 현실에서 문학적 진실을 발굴하기 위해 남다른 관점을 지닌 렌즈와 그것을 발현할 뷰파인더(viewfinder)의 장착이 필요하다. 창의적인 시각과 발상의 전환으로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편협한 시야를 부단히 개선해야 한다. 

세상에는 꼭 봐야할 것이 있고,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눈 뜨고 보지 못 할 일도 있다.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 1944)는 그의 시 '절정'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그가 눈을 감으면 '생각'이 발생한다. 일제강점기 극한 상황, 좌절의 순간에 '눈을 감음'으로써 혹독한 겨울 하늘에 무지개를 피워낸 것이다. 그에게는 눈을 부릅뜨고 물리적 현상을 보는 것보다 더 승화한 심안(心眼)이 있었고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예측하는 혜안(慧眼)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마다 관점이나 입장이 다를 수 있겠으나 차마 볼 수가 없는 '꼴불견(不見)'이 되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바로 하는 것도 스스로 갖춰야 할 태도다. 나의 안목을 높이려면 다양한 관점을 만들어 보고 입장을 바꿔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때, 어느덧 맡은 분야에서 일가견(一家見)을 이룬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는 앞만 보고 달리던 경주마의 눈 옆 가리개를 벗어던지고, 뒤도 좀 돌아보고 이웃도 살피는 이타적인 '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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