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국사에 절 한 채 짓기
혜국사에 절 한 채 짓기
  • 서금자
  • 2021.09.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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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국사에 절 한 채 짓기
 
권영해
 
문경 주흘산(主屹山) 등반 중에
전날 마신 곡주가 잘못되었는지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발효하듯
참기 힘든 난동을 부리는데
몇 번이라도 내려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으나
오르면 오를수록 내려가기 힘든 법
인사불성으로 몸부림치며 기다시피 다다른 곳에
불현듯 해탈문이 구면(舊面)처럼 반기는데
허겁지겁 해우소로 난입하여
속부터 비우고 나니
그제야 보이는구나
혜국사(惠國寺)
 
나라의 은혜를 베풀었던 절집은
가련한 중생에게도 손길을 뻗쳤으니
엄청나구나,
덩그러니!
황금빛 수국 같은 그 모습
비우면 비울수록 홀가분하게 차오르는
압도적인 충만감
 
옥상옥보다 옥중옥(     中屋)이 더 높은 법
혜국사 경내에 탐스런 국화 한 송이로
모든 번뇌 내려놓으니
절 속에 심오한 절 한 채 창건하였구나
혜국사(惠菊寺)로
해탈하였구나
 
△권영해: '현대시문학'을 통해 김춘수 시인 추천으로 등단. 울산광역시 문화예술 공로표창. 울산문인협회장. 시집 '유월에 대파꽃을 따다' '봄은 경력사원'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

서금자 시인
서금자 시인

이 시에서는 마음을 씻는 폭포소리가 들린다. 하여 이 시를 읽으면 독자들은 시인과 함께 문경 주흘산 등반을 함께 하게 된다. 곡주도 함께 마시고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발효하듯 참기 힘든 난동도 함께 겪는다. 오르면 오를수록 내려가기 힘든 법 인사불성으로 몸부림치며 기다시피 다다른 곳에서 허겁지겁 해우소로 난입하여 속부터 비우고 마음속에 심오한 절 한 채도 함께 창건한다. 
 
 권영해 시인의 '혜국사에 절 한 채 짓기'는 가벼운 듯 결코 가볍지 않은 그리고 익살을 겸한 진지함을 맛보게 한다. 시가 꿈틀꿈틀 살아나와 독자들을 조였다가 풀었다가를 자유자재로 하고 있다. 이렇게 긴장의 끈을 등반 내내 놓지 못하게 하고는 모든 번뇌 내려놓고 절 속에 심오한 절 한 채 창건하였구나로 능청을 떨기도 한다. 이런 능청이 시인의 개구진 모습을 오버랩하게 되어 독자들을 싱긋 웃게 한다. 이렇게 시인은 대상을 바라보는 눈이 정갈하고 맑아 독자들이 기분 좋게 시의 행간에 빠져들게 만든다. 한 마디로 시가 참 신선하고 맛깔스럽다. 
 
 혜민스님의 명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여기서도 통한다. 우리는 다급한 해우(解憂)전 처럼 앞만 보고 가파른 길 오르며 살아 오지 않았던가. 하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놓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독자와 함께 걸으며 절박함과 긴장을 반복하며 진정한 휴(休)를 맛보게 함은 과히 해탈의 경지다. 하여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휴! 한숨 길게 쉬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비운 만큼 귀한 무언가가 채워질지도 모를 일, 번뇌를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 심오한 진리와 함께 절 한 채를 창건할지도 모를 일. 쫓기듯 살아오는 우리의 어제를 차분히 돌아보게 한다. 
 
 우리 모두는 혜국사(惠國寺)를 창건할 힘과 지혜가 잠재되어 있지 않을까. 오늘은 마음의 혜국사에 절 한 채 지을 일이다. 
 나라의 은혜를 베풀었던 혜국사(惠國寺) 
 가련한 중생에게도 손길을 뻗쳐 줄…  시인 서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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