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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여고 김건희
신선여고 김건희

우리 엄마는 부지런하시다. 그런데 너무 부지런하시다. 게다가 정말 깔끔하시다. 조금이라도 주변이 지저분하면 참지 못하신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엄마의 성격이 만나, 엄마는 매일 엄청난 집안일을 하신다. 하루 몇 번이나 방을 닦으시고, 식사 때마다 새로 요리한 반찬을 준비하신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4남매의 장녀인 나는 받은 사랑만큼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었다. 집안일로 힘든 엄마를 도우려 노력했고, 그래야 했다. 여섯 명의 대식구가 만들어내는 집안일은 말 그대로 엄청났다. 처음에는 칭찬과 인정에 기뻤지만, 슬슬 짜증이 났다. 나도 집에서 편하게 놀고 싶었고, 집안일은 모르고 살고 싶은 어린 나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완벽에 가까운 성격과 내 눈 앞에 펼쳐진 집안 상황을 계산하니, 그리 바라는 마음조차 사치였다. 


 점점 장녀라는 나의 위치가 괜히 부담스럽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만드는 동생들에게 궂은 잔소리를 쏟아냈다. 나의 이런 푸념을 들으면 '장녀로서 엄마 일 좀 도와드리는 것으로 뭘 그렇게 심하게 힘들어 하나?'며 나를 철없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장녀로서 힘들었던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짓이기며 키운 불만과 짜증이 어른이 되어서야 끝없이 솟구쳐오르는 것을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는 집안일을 조금씩 내려놓으셨다. 그사이 나도 나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애썼다. 가족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나 자신에 덮어씌웠던 책임감과 그로 인한 가족에 대한 불만이 내 고통의 원인임도 알았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했다. 심하게 삐뚤었던 내 마음이 서서히 제 자리를 찾으니, 진정으로 해보고 싶은 일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나를 설레게 하는 행복한 일들에 기분이 좋았지만, 그 기쁨은 찰나였다. 마음만 굴뚝같았고 아무런 실천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계획한 대로 곧 시작하겠지'싶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행동하지 않는 나를 한심스럽게 바라보며 맹렬히 비난하고 비판도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 나를 지켜볼 수밖에 말이다. 그 시간 동안 여전히 부지런한 엄마도 다시 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차!' 싶었다. 나는 깔끔하고 완벽한 엄마 때문에 내가 힘들었다 했지만, 실은 '내'가 고통의 원인이었다. 내 능력을 발휘하고픈 마음만큼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도 않은 것도 나 자신이었다. 두 감정을 다 가진 내가 장녀로서 엄마를 돕겠다고 많은 일을 하려던 것은, 내가 나를 극복하고 스스로 행동해야 했던 것이고, 그것이 다름 아닌 '고통'이었던 것이다.


 '아, 내가 그랬구나'하는 순간 고통은 마침표를 찍고 내 마음에서 떠나주었다. 쉬고만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도 나 자신이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모두 나 자신임을 받아들이니 어느 순간 두 존재가 내 안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이런 것을 하고 싶으니,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며 소곤거리는 둘을 보고 있으니 조금 멋쩍고 신기했다. 책에서 본 거창한 단어를 빌리자면 '에고(ego)'와 '참나(眞我)'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그 이후로 엄마가 달리 보였다. 엄마 때문에 힘들었던 과거는 더는 없다.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하나인 엄마와, 엄마와 꼭 같은 삶을 사시는 아빠의 삶을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나'라고 하는 끝도 없는 동굴을 빠져나오며 느껴야 했던 고통도 감사히 받아들였다. 이제 앞으로의 내 삶과 행동은 내 안의 그들과 함께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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