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그 문앞에서
졸업, 그 문앞에서
  • 정영숙
  • 2021.10.2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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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정영숙 수필가
정영숙 수필가
정영숙 수필가

졸업을 어떤 상황의 종료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거쳐 가는 또 하나의 관문 같은 것이라고 믿었다. 졸업이라는 말은 등록한 학교나 학원의 과정을 마칠 때 쓰이지만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현재를 매듭지을 때 쓰이기도 한다.


 어린 시절, 기대와 설렘보다 허전함과 아쉬움으로 나를 풀 죽게 했던 졸업이 있었다. 외딴집에 살았던 나는 등하굣길을 항상 언니와 함께했다. 늘 붙어 다니던 언니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졸업이라는 말이 싫어졌다. 가난으로 중학교 입학도 하지 못한 채 맞았던 내 초등학교 졸업식도 졸업이라는 말을 시린 단어로 남게 했다. 이듬해 모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풀 죽었던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었지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릿하다.


 그렇다고 모든 졸업이 아리거나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반백이 지난 나이에 대학교 졸업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번진다. 졸업식이 있던 날, 가족들과 함께 졸업사진을 찍으시던 어머니가 '마음껏 공부시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이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웃으셨다. 가난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채 평생 고생만 하신 당신의 세월은 안중에도 없이 늘 자식들을 안타까워하시던 어머니였다. 어느새 중년에 접어든 딸의 사각모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이 밝고 환했다.


 "지 때에 공부만 시켰으면 뭐라도 해 묵았을 낀데…"
 수많은 의미를 내포한 말이었다.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미안함을 치워 드린 게 무엇보다 잘한 일 같았다. 졸업이라는 단어가 뿌듯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누구나 여러 번의 졸업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나 역시 크고 작은 졸업이라는 문을 거치면서 성글기만 했던 내면이 조금씩 단단해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가끔은 졸업이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눈앞에 데려다 놓고는 하여 일상을 출렁거리게 할 때도 있었지만 젊음이 있어 새로운 시간이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닥칠 파고에 대한 우려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하나면 거뜬하게 잠재웠다. 졸업이라는 문을 넘을 때마다 내공이 쌓여 조금씩 품 넓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졸업은 언제 다시 있을까를 버릇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는 날이 바로 그날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직장생활이 힘들 때마다 어떻게든 정년을 채우리라 다짐했고, 그것을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직장인 모두가 정년을 채우는 게 아니기에 더욱 그러했다. 회사 사정으로 중도에 퇴직에 내몰리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건강을 잃어 직장을 포기하기도 한다. 더 나은 조건을 찾아서 이직도 하고,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두기도 하고, 자영업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려고 사표를 던지는 이도 있다. 많은 경우의 수를 넘어 몇십 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지 싶었다.


 퇴직한 후에는 세상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사회복지사와 심리상담사 등 몇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침침해진 눈으로 인터넷 수업을 듣는 일도, 주말마다 짬을 내어 실습하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을 의미 있게 써야 한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한 노력이 얼마만큼의 효용성을 가져올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정년퇴직 이후 시간에 대한 기대도 컸다. 퇴직하고 나면 선물처럼 한가로운 시간이 주어져 충분한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산을 마음껏 오르고, 우리 땅 구석구석을 내 발로 걷기도 하고, 아쉬웠던 여행도 실컷 하면서 나만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야말로 화양연화 같은 날이 주어지리라 믿었다. 


 이제 연말이면 삼십 년을 넘게 다닌 직장에서 정년퇴직한다. 요즘 들어 왠지 퇴직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고,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한때는 퇴직이 또 다른 일을 시작할 기회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영 자신이 없다. 현역이라는 자부심을 접고 한발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여태 내가 살아온 방식과 다르다. 몸도, 마음도 젊은 날처럼 꿈을 좇아 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만 퇴직하는 것도 아닌데 왠지 낯선 길을 혼자 가야 하는 것 같아 착잡하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30년이 흘렀다'라던 말이 내 삶이 될까 두렵다. 인생 백세 시대이니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심정일 테고, 이런 내 마음에 공감하기도 할 터인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자꾸만 허허롭고 심란해진다.


 다시 들메끈을 조여 맨다. 선배들이 넘어갔던 문, 그리고 내가 넘어가야 할 퇴직이라는 문 앞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시 생각해 본다. 퇴직 후 나에게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능가할 수는 없겠지만 연륜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혜를 고임돌 삼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졸업이 새로운 시작으로 다가오던 때를 생각하며 담담하게 퇴직을 맞이하려고 한다. 졸업이라는 문 뒤에 색다른 입학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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