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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읍성 논 두렁 옆에서 아침 이슬을 머금은 한련초가 하얀꽃을 피웠다.
언양읍성 논 두렁 옆에서 아침 이슬을 머금은 한련초가 하얀꽃을 피웠다. ⓒ김영덕

언양읍성에는 논이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논농사를 짓고 계신 농부가 있다. 출퇴근길에 지나치며 자주 보게 된다. 영농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옛날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옆에 삽 한 자루를 끼고 가신다. 언제나 그 모습으로 지나가시는데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있다. 미소가 그렇게 아름다운 연로하신 분을 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그 분은 항상 지긋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삽 한 자루와 함께 논 여기저기를 다니며 논을 돌보고 계신다. 미소가 아름다운 농부와 풍성한 논. 논에 살아가는 다양한 동식물들. 개구리, 메뚜기, 족제비. 사마귀풀, 여뀌바늘, 벗풀, 물달개비. 그리고 약초도 그 논에 있다. 흰색 꽃이 피는 국화과 식물 한련초다.

연밥의 모양새와 닮은 한련초의 열매.
연밥의 모양새와 닮은 한련초의 열매. ⓒ김영덕
검게 변한 한련초 잎은 탈모와 흰머리 등 두발 관리에 효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검게 변한 한련초 잎은 탈모와 흰머리 등 두발 관리에 효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영덕

한련초 이름의 유래에 대해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서는 '한련초라는 이름은 한자명 한련초(旱蓮草)에서 유래한 것으로, 열매의 모양이 연밥(蓮子)을 닮았고 새싹과 열매의 즙이 공기 중에 노출되어 검게 변하는 모습이 가뭄에 마른 연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붙여졌다'라고 하였다.

봄에 한련초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일 뿐이다. 그런데 하얀 꽃이 피면 눈에 들어온다. 8월부터 9월까지 피는데 대부분의 국화과 식물이 그렇지만 한련초의 꽃도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 예쁘다. 꽃이 지고 맺는 수많은 열매의 모양도 신기한 데가 있다. 그 모양을 보고 옛 사람들은 연밥을 닮았다고 한 것이다. 

'한국식물생태보감'에서 '한련초는 아주 습한 땅에서 자주 관찰된다. 농촌 들녘의 건조하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든 산다. 도랑이나 묵정논과 같은 늘 습한 곳에 사는 습지식물로도 분류된다. 물기가 빠진 논바닥처럼 약간 건조해진 누기(漏氣) 있는 땅에서도 잘 산다. 단지 열매에 깃털(冠毛)이 없기 때문에 종자를 퍼트리기 위해서는 종자 익을 시기에 지표면에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한다. 발아시점에는 반대로 땅바닥에 물이 빠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물을 대고 빼는 벼농사가 성행하는 곳이라면 한련초는 늘 영역을 확보한다'라고 한 것처럼 언양읍성에서도 한련초가 사는 곳은 논두렁이나 논가 물이 많은 곳이다.

한련초는 논에 사는 약초이지만 잡초이기도 하다. 농부에게는 없애야 할 잡초이다. 다행인 것은 오가며 관찰해 보니 한련초는 뽑기 쉽고 한삼덩굴처럼 무서운 기세로 다른 식물들을 고사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리를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 드문드문 자라고 뽑기도 쉽고 거기에 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약초이기까지 하니 고마운 풀이다.

'동의보감'에서는 '한련초. 수염과 머리털을 자라게 하고 희어진 털을 검어지게 한다. 음력 6월에 채취하여 즙을 내서 생강즙, 꿀과 함께 넣고 달여 고약을 만들어 한번에 1숟가락씩 술로 먹는다'라고 하였고, '한련초의 줄기를 꺾으면 진이 나오는데 잠시 후 검게 변한다. 따라서 머리와 수염을 검게 하는 약에 자주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동의보감에 기술된 용도 이외에도 한련초는 량혈지혈(凉血止血)하고 보음익음(補陰益陰)하는 효능이 있어 지혈과 보음(補陰)을 목적으로 주로 처방하는 한약이다. 또한 한련초는 성(性)이 량(凉)하므로 비허(脾虛)하여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에게는 처방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련초를 처방한 경우는 주로 혈열을 식히고 지혈하며 음허(陰虛)한 경우 보음(補陰)할 목적으로 처방해 왔다. 동의보감에서 한련초는 주로 탈모와 흰머리를 검게 하는데 사용했고 다른 의서에서도 흰머리를 검게 한다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그 즙이 검다는 것에서 비롯한 생각일 것인데 아직까지 한련초를 처방하여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한련초는 탈모와 흰머리에 효과적인 약물일 것이라 생각한다.

김영덕 심호당 한의원장 kyd120@hanmail.net
김영덕 심호당 한의원장 kyd120@hanmail.net

한약을 처방하는 경험이 늘어 갈수록 이전까지는 사용해 보지 않았던 용도로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약초를 관찰하고 그 특성을 알아가고 그로 인해 약초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면 약초의 사용처가 더욱 분명해지기도 하고 새롭고 다양한 분야에 사용하게 되기도 한다.

출퇴근길에 한련초를 만난다. 검게 변한 한련초의 잎과 열매를 보는 날엔 언젠가는 한련초를 탈모와 흰머리에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탈모를 겪고 있다. 나 또한 그 중의 한사람이다. 학창 시절에는 풍성했는데 졸업하고 임상 한의사로 생활하면서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이 이제는 바람이 불면 시리다는 느낌이 들 정도까지 적어졌다. 거울 앞에서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언제 이렇게 많이 빠졌나 싶기도 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어떤 질환이든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다르다. 한의원에 탈모로 내원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다. 그럴 때마다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저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의 심정을 안다. 언젠가는 탈모로 내원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드리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한련초를 들여다본다. 김영덕 심호당 한의원장 kyd1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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