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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억새꽃 만발한 강어귀 어디쯤 조개섬이 있었더랬지요.
때론 친구 같았고, 때론 형 같았고 어떨 땐 어머니 같았던 누이들과 자주 꼬시래기 잡으러 다니던 곳이었지요.

가을 햇살 말간 날, 뒷산에서 시누대 꺾고 지렁이 몇 마리 잡아 나서면 지척이었습니다.
가끔 기다림에 지쳐 염초 위에 두 팔 베고 누우면 파란 하늘이 출렁이듯 내려오고 갈바람 수군수군 귓불을 간지럽히기도 했습니다.

현대차 울산공장이 지금처럼 강변을 다 차지하지 않았을 때 저기 5공장 어디쯤인가 끝 간 데 없이 너른 뻘밭이 있었지요.
그 뻘밭을 달려가면 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진풍경이 펼쳐졌지요. 한 마리 잡아보겠다고 달리고 넘어질새 라면 등 뒤에서 들려오던 누이들의 깔깔깔 웃음소리만 긴 여운처럼 남았지요.

아쉬워하는 동생을 위해 두 팔 걷어붙이고 게 구멍을 파헤치던 누이들의 얼굴은 금세 뻘 범벅이 되고 빨래거리만 가득한 귀가는 어머니의 야단으로 저물곤 했습니다.

단지 맏이라는 이유로 그 꾸중의 몫은 큰 누이가 다 짊어졌지만, 반성하는 척 나란히 무릎 꿇은 나는 작은 누이와 손가락 장난에 여념이 없었지요.

물가로 놀러 간 아이들을 보는 부모들의 염려를 체화하기까지는 무수한 날들이 필요했습니다.  

시와 그림을 좋아했던 누이들은 벌써 억새보다 더 흰 백발의 중년이 되었습니다. 한 시대를 지나온 삶은 궤적 같은 주름도 새겼습니다.

제 속을 비우는 대신 유연함을 얻은 억새는 바람과 어울리며 그 절정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가녀린 대궁 위에 피워올린 은백색의 찬란함 뒤로 노을이 집니다. 

이제 억새는 풍성한 빛을 바람에 주고 바스러질 것입니다. 소멸조차 자연스러운 계절입니다.
낯설게 변한 곳에서의 익숙한 기억이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의 이미지들이 찡한 감정의 알갱이들을 남겨놓습니다. 중년의 가슴에도 가을은 오나 봅니다.  글=김정규기자 kjk@ 사진=이상억기자 agg77@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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