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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 수필가
이선호 수필가

지난 주말에 일행과 남한산성으로 등산을 갔다. 점심 식사를 위해 정상 근처의 산상 테이블에 도착했다. 마침 한 그룹의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리를 물려받은 우리 일행도 테이블 위에 점심 식사를 위해 자리를 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일행은 다름 아닌 한 가족으로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선머슴처럼 보이는 5명의 외손자와 60대 후반쯤 연령대의 외할머니 등 총 6명이었다. 흔히 접할 수 없는 특이한 가족 모임의 진풍경을 보며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할머니의 딸 셋이 결혼해서 낳은 8명의 외손주 중 외손녀 3명을 제외하고 외손자 5명을 데리고 남한산성에 등산을 온 것이다.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말쑥해 보이는 사내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부모 또는 조부모들의 자녀 양육과 교육에 있어서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손주들을 돌보는 일은 뇌가 지속적으로 잘 기능하도록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이 들어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면 적어도 마음이 젊어진다는 말은 여러 연구 결과로 확인된 사실이다.

할머니는 숲속에서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맑은 공기, 새소리 바람 소리를 함께 만끽하면서 어린 손주들에게 인간의 유전자에 대초원에 살던 원시인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본능을 일깨워준다. 숲속에 들면 어른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어들고 백혈구가 증가해 면역체계가 강화되고 신체기능 회복으로 상쾌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에게는 창의성 고취는 물론 이타적 심성과 용기 그리고 인내심을 키워준다.

호주 연구 기관에서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 손주를 돌보는 여성들은 알츠하이머병이나 치매 혹은 다른 인지 장애에 걸릴 위험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단, 일주일에 5일 이상 손주를 돌보는 과도한 수준은 신경 퇴행 장애에 걸릴 위험이 더 높았다. 아이를 돌보며 친밀하게 자주 소통하는 것이 인지기능 향상, 우울증 및 알츠하이머병 예방 등 정신 건강에 대단히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고 소통하는 대가로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실로 엄청나다. 오래도록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외로움을 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쓸쓸함을 달래고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응원하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사랑이란 상대의 존재 자체에 끌리는 마음이다. 고슴도치도 자신의 새끼들 털은 함함하다고 한다. 가족 사랑의 근본은 피를 함께 나눈 혈육이라는 유대감과 그 속에서 뿜어내는 생명력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강하게 연결돼 있는 끈끈한 동질감의 다름 아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가 보이지 않더라도 곁에 있어 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했다.

흔히들 '손주는 올 때 반갑지만 갈 때가 더 반갑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함께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의 농도는 옅어지고 어른들은 멈출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에너지를 감당 못해 버거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적 사실로 보면 쉬 뜨거운 방 쉬 식는다. 여기에 '살라미 전술'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손주들과 만났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주 사랑의 보따리를 한꺼번에 확 풀지 말고 상황에 따라 조금씩 나눠 풀면 열기의 고갈이 느려져 생각보다 오래 함께할 수 있다고 본다.

타고난 개성과 성장 환경이 각기 다를 수 있는 5명의 외손자들은 숲속에서 자연의 이치와 남한산성의 역사를 배우며 자신을 변화시킨다. 할머니는 손주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친구처럼 산속을 거닐며 자연을 이해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격대교육(隔代敎育)을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할머니의 언행에서 느껴지는 역사 지식, 일반교양과 카리스마, 손주들의 연령대 등을 망라해보면 나이에 비해 활력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순간에 할머니는 일생일대의 아름답고 경탄스러운 추억들을 손주들의 가슴에 심어주고 있다.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손주들은 성인이 돼 산에 오를 때마다 할머니의 체온과 가르침 그리고 미소를 떠올리며 남다른 감회를 회상할 것이다.

지금까지 긴가민가했던 '할머니와 손주들 간에 정서적 융합'이라는 보기 드문 사례를 특별한 조우를 통해 확실하게 눈으로 경험했던 값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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