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룡능선
공룡능선

등산의 기쁨은 정상을 정복했을 때 가장 크다고 한다. 그러나 내게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오르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가슴이 뛴다고 말한다.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른 산의 정상은 그 기쁨이 곱절은 될 것이다. 필자가 지금껏 산을 오르면서 산바람에 땀과 피곤함이 함께 씻겨나가고 그 여정에 가장 가슴이 뛰었던 영남알프스의 9봉 중 신불산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불산은 산신령이 불도를 닦은 산이라 하여 신불산(1,209m)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신불산은 골산(바위산)과 육산(흙산)의 형태를 모두 갖춘 산이다. 신불산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동으로는 칼바위라 불리는 공룡능선, 아리랑릿지, 쓰리랑릿지와 같이 수려하면서도 웅장한 바위능선과 홍류폭포, 와우폭포를 품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배내골의 바탕을 이루는 왕봉골과 청수골, 파래소폭포 같은 비경을 연출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영축산과 인접하면서 가을철이면 국내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넓은 억새평원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불산은 1983년 울주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서 출발
들머리에 들어서면 신불산 정상 4.3㎞, 간월산 정상 3.5㎞, 홍류폭포 0.8㎞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홍류폭포와 간월산 갈림길이 나온다. (공룡능선 칼바위 1.7㎞, 신불산 3.0㎞) 홍류폭포를 경유하여 공룡능선(칼바위)으로 이어지는 경사 길은 초보 산행자에게는 제법 힘겹게 올라야 한다. 능선 갈림길까지 오르는 동안 힘겨운 밧줄 구간이 두 곳이나 있다. 우회하지 않고 밧줄을 타고 오르면 한겨울이라도 땀을 흘려야 할 정도로 스릴과 긴장감이 있을 정도로 너무도 감동적이다. 1시간가량 오르다 보면 신불산, 홍류폭포, 자수정동굴나라 갈림길에 올라선다. 여기서부터 바위 구간, 즉 공룡능선이 시작된다. 공룡능선은 거대한 하나의 바위봉우리로 칼바위 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 능선은 설악산 공룡능선만큼 웅장하거나 길지는 않지만, 피라미드처럼 각지고 양사면이 모두 깎아지른 칼날 위를 통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우회 등산로도 있다. 공룡능선이 끝나면 마지막 오름길을 10여 분 오르면 정상부에 도착한다. 이곳은 2000년 1월 1일에 삼남면민이 세운 신불산 표지석이 있는 곳이다. 

33m 위용 자랑하는 '홍류폭포'
홍류폭포는 신불산을 대표하는 폭포라 할 수 있다. 신불산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홍류골을 타고 내리면서 33m 높이의 위용을 자랑한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봄이면 무지개가 피어난 듯하고, 겨울이면 벼랑 끝에 고드름이 매달린 풍경은 마치 백설이 쌓인듯하다. 한여름 무더위를 식히며 폭포수를 바라보노라면 중국의 시성 이백(李白)의 시(詩) '망여산폭포'에 나오는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물줄기가 날아 흘러 삼천 척이나 떨어진다는 말로, 웅장하고 멋진 폭포의 모습을 뜻함)이란 구절을 연상케 할 만큼 그 경관이 뛰어나 사시사철 발길이 끓어지지 않는다. 

신불산에서 바라본 억새평원.
신불산에서 바라본 억새평원.

산악인들 인기코스 '공룡능선'
신불 공룡능선은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험하면서도 최상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바위 능선이다. 일명 칼바위능선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산악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필수코스다. 공룡능선은 공룡의 등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이 구간을 통과하려면 바위 등을 타고 정상 동쪽까지 아슬아슬하게 가야하므로 긴장감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상당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바위 구간이다. 공룡능선은 길이가 약 1㎞ 정도에 이르며, 능선은 바위군으로 연결돼 있어 겨울 산행이나, 초행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바위 타기를 즐기려는 산객들에게는 영남알프스의 대표적 등산코스로 알려져 있다.

정상에서 만끽하는 일망무제 풍광
신불산은 울산 12경의 하나로 가지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정상에는 정상석을 비롯한 케론(돌탑)이 있으며 주변에는 휴식과 억새평원을 감상할 수 있는 테크도 설치돼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한마디로 일망무제다. 동쪽으로는 언양과 울산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고 멀리 동해바다까지 관측이 된다. 간월산과 인접하며 문복산을 제외한 영남알프스의 산군이 한눈에 조망된다. 또한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4㎞에 걸쳐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수십만 평의 억새평원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끝없이 이어지는 억새평원!  만경추파! 억새의 천국인 신불산! 이곳에 오르면 바람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영남 빨치산 투쟁의 근거지가 된 곳
격동의 시대. 전쟁과 치열한 좌파와 우파의 대립. 많은 빨치산이 자신들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전국적으로 분포해 싸웠던 것은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다. 빨치산들은 지리산 근방에서 대규모로 활동을 하였고, 영남지역에서는 신불산이 그 근거지가 되었다. 신불산 일대는 간월산, 영축산, 재약산, 가지산, 운문산 등 고봉들이 인접해 있어 크고 작은 계곡과 산봉우리들은 빨치산 활동의 최적지가 되었다. 특히 신불산 서쪽 갈산 고지(681m)는 사방이 깎아지른 벼랑으로 이뤄져 수비가 쉽고 멀리 부산으로 넘어가는 원동재까지 훤히 바라보이는 지정학적 요새였다. 남도부는 그 정상에 지구당 본부와 유격대 사령부를 함께 두고 부산과 경남 동부지역을 교란하였던 곳이다. 이곳은 1948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빨치산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전쟁 발발 이후에는 동해 남부유격대 정예부대가 이북에서 내려와서 기존에 존재하던 빨치산들과 합류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역사적 아픔 간직한 단조성
신불산과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산정에는 축조연도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지만, 폭이 3m, 둘레가 12㎞쯤 되는 단조성(丹鳥城)이 있다. 산세가 험악하고 기암절벽으로 치솟아 마치 허공중에 뜬 성이라고 하였다. 단조(丹鳥)란 붉은 단(丹)자와 새 조(鳥) 자로 머리가 붉은 학(鶴)을 말한다. 산성의 모습이 마치 목을 길게 뽑아 세운 학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안에는 천지가 있어 사철 마르지 않는 우물이 12개나 있다. 조선 영조 3년(1727) 무렵 암행어사 박문수가 영남 일대를 돌 때 단조성에 올라와 성을 보고는 '산성의 험준함이 한 명의 군사가 능히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곳'이라 하였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도 이 성을 쳐다보고는 '마치 하늘에 붙은 성 같다. 조선에 성이 없으랴만 이 성마저 잃을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난공불락의 성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성이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어이없이 함락당하고 말았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한 노파의 아들이 왜병에게 포로가 되었다. 왜병들은 그 노파에게 만약 단조성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면 아들을 살려 주겠다 하였다. 노파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단조성으로 가는 비밀통로를 알려 주었다. 왜병들이 단조성 서쪽 산성으로부터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후문을 불의에 기습하니 우리 쪽 병사들은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태연하게 동쪽 낭떠러지 아래쪽만 경계하고 있다가 제대로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몰살을 당했다고 한다. 

9봉 완등 도전 산객들로 인산인해
영남알프스는 특히 가을에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사색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을 풍광을 놓칠세라 단풍과 억새를 찾아 산에 오른다. 그러나 지금은 연중 찾는 사람들이 많다. 울주군에서 영남알프스 9개 봉우리 완등을 인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증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산은 말이 없다. 인간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신들의 일시적인 기준에 적용하려고 말 없는 산을 짓밟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연의 아름다움이 지닌 불변성은 정신적 건강의 기초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산이 사람들에게 훌륭한 가치를 지닌 까닭은 변함없는 산의 속성 때문이다. 산은 꿋꿋하고, 산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똑같다. 인간은 산의 한 부분이며 산은 인간의 한 부분이다. 근심이나 슬픔, 괴로움을 지닌 사람은 산에서 마음의 평정을 얻기도 한다. 점점 깊어만 가는 가을! 이번 주말 내 마음의 산을 찾아 발길 닿는 곳으로나 떠나 보길 바란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