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품은 바람은 모두 한 순간이다
 
조숙향
 
바람을 품고 살았다
헛헛해지는 바람을 지그시 누르면
가슴에서 풍선이 튀어나왔다
풍선은 감나무 가지에 걸렸고
빨갛게 익은 바람이 그늘을 만들기도 했다
때로는 말 많은 까치가 날아와
바람을 유혹하기도 했다
유혹이 바람의 결핍에서 오는 손짓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바람을 타고 산기슭을 기웃거리며 떠도는 날이 많았다
 
어린 바람들이 집 안에서 자라났다
지독한 안개가 내리는 밤 아버지는
진고개를 넘다가 바람과 맞닥뜨렸다
밤안개가 옷자락을 여미었지만
축축해지는 바람을 잡지 못했다
가을밤 내내 바람을 잡으려다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날아올라 구름이 되었다
 
아직까지 바람을 놓지 못하는 것은
내 결핍의 빛깔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조숙향: 강원도 강릉 출생.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산맥 제 10회 기획시선 공모 당선.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 시인협회 회원, 울산작가회의 회원, 시산맥 시회 회원,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울주지부장. 시집 '도둑고양이 되기' 동인지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시인 안에는 얼마나 많은 것을 채우고 있을까? 아마도 시인은 은유의 덩어리를 둥둥 말아두지 않았을까? 그러나 '헛헛해지는' 빈 것에 대한 갈망은 늘 바람 같은, 손에 닿지 않아 무질서한 시간으로 유혹되었을 날들이 많았을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과 맞서는 시인은 파도가 만든 아일랜드의 모허 절벽의 아름다움과 고독과 쓸쓸함 같은 바람 한 자락을 품고 살지나 않았는지. 아픈 빛깔이 여러 겹 중첩 되어 새로운 사유의 은유들이 시를 이끌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이 풍선, 그늘, 까치, 유혹 등 많은 것을 가졌지만 시인에게는 늘 결핍의 은유로 머물고 있다. 바람에게서 언어를, 아버지를 찾고 어린 자신을 불러 오지만 시인의 공허함은 '산기슭을 기웃거리며 떠도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바람이 시인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는 것을 아마도 시인은 후에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수한 삶이 이어진 것 또한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 시인에게서 바람이 순간이었다 해도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인지 모른다.
 
'결핍의 빛깔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 시인이 바람을 져버릴 수 없는 이유라 한다. 그래서 시인의 허기는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다 시로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빨주노초파남보 빛깔 같은 삶들아 풀어놓은 것 하나 어디에도 시인의 바람은 편한 것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바람 안으로 자꾸만 외로운 은유의 동행이 보이는 시다.  도순태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