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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기를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낡은 자가용에게 '베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할머니가 앉아 쉬는 헌 의자에게는 '프레드'라는 이름을, 밤마다 누워 자는 침대에게는 '로잰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오래오래 살아온 집에는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지요. -첫 페이지 글-
 
 친구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 홀로 남겨진 할머니는 자기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들에게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순해 보이는 갈색 강아지 한 마리가 출입문 가로 슬금슬금 다가왔습니다. 할머니는 배고픈 강아지에게 햄을 건네 준 다음 돌려보냅니다. 하지만 강아지는 날마다 할머니네 집 문가로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고는 집에 가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강아지를 예뻐했지만 머물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강아지를 머물게 하려면 이름을 지어 주어야만 하니까요. 할머니는 강아지보다 오래 사는 것이 두려워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가자 강아지는 무럭무럭 자라서 어엿한 개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개의 이름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그 개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갈색 개는 할머니네 집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할머니는 문가를 내다보았지만 개는 오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문득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졌습니다. 자가용을 몰고 개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만, 그 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점점 더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개들을 보호하는 사육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육사가 개의 이름을 묻자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친구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다정하게 웃는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습니다. 사랑스런 친구들의 이름도 모두모두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던 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깨닫고선 개 이름을 불러줍니다.
 "우리 개 이름은 '러키'랍니다! '행운'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죠."

아동문학가 엄성미
아동문학가 엄성미

 할머니는 자신보다 더 오래 사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또 이름을 지어주고 정을 주는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상실의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할머니는 이별 앞에 태연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환절기라 그런지 주변의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난 소식이 자주 날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져 이 동화책을 펼쳐 봅니다. '이별 때문에 위로받을 시간'이 필요한 분들에게 이 동화책을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동문학가 엄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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