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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봄
 
마당에 호랑이가 산다
 
드러낸 송곳니 휘날리는 갈기
완벽하게 전투태세를 갖춘
굶주린 초록의 호랑이들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낮게 몸을 웅크려
은밀하게 눈알을 굴리다
 
구름에서 스미는 피 냄새에
두 팔 벌려 뛰어오르며
포효하는 소리
 
사방 들썩이는 땅에
화단에 모인 꽃들
일시에 숨을 멈춘다
 
△임봄 시인: 1970년 경기도 평택 출생. 2009년 '애지'등단. 2013년 '시와사상' 평론 등단. 시집 '백색어사전' 평론집 '상상력의 에코그라피' '고독, 시간과 존재의 코나투스' 등.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풀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첫 행부터 다짜고짜 마당에 호랑이가 산다고 했을까. 마당이 있거나 텃밭을 가꿔본 사람들은 그 무서움을 몸서리나도록 실감한다. 이 호랑이들은 전투태세를 제대로 갖춰 진군하며 절대 섣부르게 나서지 않는다. 1군 2군 3 4 5 6… 숱한 전투병들이 땅 속에 포복했다가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다. 종대 횡대로 땅을 뚫고 진군하다 뽑히고 나서 전멸했거니 방심할 때쯤 포복병들은 애처롭게 싹을 내민다. 소탕하기엔 너무 여리고 가냘프다. 살짝 문질러도 스러질 것 같은 몰골에 설마, 하고 시기를 넘겨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한 차례 비가 내리고 나면 굶주린 초록호랑이들은 온 땅을 점령하고 만다. 이 호랑이들은 구름 냄새, 아니 그것을 피 냄새라고 하며 땅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뛰어오른다. 포효다.            
 
 이 시는 풀과 호랑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대비시켜 살아있는 감각으로 치환시킨다. 시인은 구름에다 피 냄새를 집어넣고 풀이 쑥쑥 자라는 것을 포효하는 소리라고 감각적인 묘사를 서슴지 않는다. 짧은 시 속에 생생하게 생동하는 이미지를 볼 수 있어 기껍다. 
 
 풀은 민초라는 이미지에 우리는 길들여져 있다. 밟으면 아무런 저항 없이 밟히고 쓰러뜨리면 그대로 넘어지는 힘없는 풀, 그런데 시인이 호랑이로 보았다는 것은 발견이다. 힘없는 풀이 이 경우에는 어마어마하도록 무서운 대상이 된다. 거꾸로 민초들을 무서워하는 대상이 누구일까. 한 여름 승하던 풀들을 바짝 두려워하는 어떤 시기가 오고 있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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