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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마중'
'동시마중'

11월을 좋아합니다. 그 나무를 좋아합니다. 몸뚱이가 꽝 마른 그 호숫가의 시커먼 한 그루 나무를 좋아합니다. 11월엔 첫사랑을 만나고 싶었고, 첫 책을 내고 싶었고, 해마다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어느 날 사랑이 왔고, 오랫동안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지만, 그 나무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는, 그냥 시커멓고 꽝 마른 그 호숫가의 아름다운 한 그루 나무일 뿐입니다. 굳이 이름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사랑을 하는 데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기다리는 이가 올 것입니다. 끝내 아니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을 것입니다.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만으로도 좋았으니까요!
 
 동심의 숲 산책 11월에는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11·12월호에 있는 작품 두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12번째 '올해의 동시'는 올해 여러 문예지 발표작 중 올해의 동시 선정위원들이 4차에 걸쳐 가려뽑은 총102명의 102편 동시가 실렸습니다. 
 
# 마이너스 플러스=제로
 
김풀
 
할아버지 치매 증상은/ 무엇이든 갖다 버리는 거고//
할머니 평생 습관은/ 차곡차곡 모으는 거다//
할아버진 어느 날/ 할아버지를 버린 적도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걸 또/ 파출소에 가서 주워 오셨다//
그러니까/ 수학 공식처럼 늘//
마이너스 플러스=제로//
그렇게 구십 살이 넘도록/ 행복하게 사신다//
할머니가 찾으러 올까 봐/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도 못 가신다//

'어린이와 문학' 2021년 여름호
 
# 어둠 
 
김현숙
 
도시는 살 곳이 못 돼
 
찾아가기만 하면

눈부신 불빛이
 
자꾸 쫒아내 

웹진 '동시빵가게' 23호
 

성환희 아동문학가
성환희 아동문학가

 시는 어른만을 대상으로 창작하지만 동시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익숙한 것을 지양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같은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은 고급화되어 더이상 익숙함에 머물러 있지 않고 늘 새로운 맛을 찾아다닙니다. 동시 독자들 역시 새로운 눈과 입과 귀를 가진 창작자의 작품에 감동합니다. 위 두 편의 작품은 독자의 입장에서 큰 즐거움을 주었고, 문우의 입장에서 부러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웃음과 행복감을 주신 두 분 작가님께 감사합니다.
 
 호숫가를 걷고 숲을 걷고 달팽이를 잡으며 지냈습니다. 궁금한 길을 찾아 걷고 달렸습니다. 잠시 마음의 발걸음을 멈추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과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생각해봅니다. 유유자적 쉼 없이 걸어온 한 해를 반성하면서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다독입니다. 더 잘 쓰겠습니다. 
 성환희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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